오피니언

  •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일언상방: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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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일언상방: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 지면기사

    금강경에 따르면 누구든 나름대로 '나'라고 생각하는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실제 세계인 여래(如來)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이든 어떤 형식이든 아상이 있는 것이 중생(衆生)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나 아(我)자를 파자하면 손 수(手)와 창 과(戈)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손에 창을 들고 있는 형상이 나다. 나라는 실체가 없어도 중생은 나라는 나름대로 상을 만들고 경계를 만들어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내 몸에 상처가 나면 고통을 느끼는 것도 나라고 느끼는 내 몸의 경계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있으니 그것은 내 고통이다. 그래서 자아를 지키기 위해 그 영역에 집착하다 보면 그 힘이 강해지는 데 그것을 아집(我執)이라 한다.아집(我執)이 강할수록 자신의 일이라 생각되면 열정을 가지고 하지만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집이 강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정치영역에서의 최고지도자이다. 아상과 아집은 자연스레 독선(獨善)으로 이어져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공자는 정공(定公)의 질문에 '나를 어기지 않는 것이 임금 노릇의 참맛이다'라는 이 말 한마디는 나라를 망칠 수 있다고 하여, 지도자의 독재와 독선을 경계하였다. 지도자의 귀에 국민의 말이 안 들리면 그것이 바로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 경인일보 독자위 7월 모니터링 요지·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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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일보 독자위 7월 모니터링 요지·경기 지면기사

    특성화고 전공무관 실습 문제점 잘 지적정리의궤로 본 화성 복원예산 등 다뤄야심각한 쌀 처리문제 심층취재 했으면…경인일보 7월 독자위원회가 지난 22일 경인일보 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이날 회의에는 김준호(수원대 객원교수) 위원, 박은순(경기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위원, 이을죽(미래사회발전연구원 이사) 위원, 장동빈(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위원, 허성수(안산상록경찰서 생활안전과장) 위원, 홍문기(한세대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경인일보에서는 김성규 사회부장이 나와 의견을 들었다.7월 독자위원회의는 한 달 간 각 분야에서 다뤄진 기획보도에 대한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먼저 지난달 독자위원회의에서 호평을 받았던 '이천 SK하이닉스 주변 논 황폐화'기사에 대해 장동빈 위원은 "6월에 이어 7월에도 이천 SK하이닉스와 관련된 보도들이 이어졌는데, 결과적으로 경기도까지 움직여 농경지 황폐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경인일보의 지속적인 보도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칭찬하고 싶다"며 "다만 아쉬운 점은,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공장 폐수였는데 도내 한강 수계나 안성천 수계, 지방하천 등이 농업용수로 활용되는 만큼 문제가 더 확장돼 전체적인 농업용수를 다루는 쪽으로 확대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허성수 위원도 "이천 SK하이닉스 기사로 경인일보가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는데,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였다"며 "취재 초기 단계부터 뒷얘기,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는 스토리텔링형 기사도 지면에서 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전했다.'기술 대한민국, 뿌리째 흔들린다' 기획기사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이을죽 위원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전공과 무관한 실습에 내몰리는 등 특성화고 실습에 대한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며 "전형적인 실적주의의 행태로 보이는데,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능력껏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라는 생각으로 기사에 깊이 공감했다"고 평가했다.홍문기 위원은 "도제식 교육 시

  • [수요광장] '브렉시트(Brexit)'가 금융도시 런던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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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광장] '브렉시트(Brexit)'가 금융도시 런던을 망치고 있다 지면기사

    반세계화·신고립주의 바람이우리나라에도 불어닥치고 있다.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한국 도시로 옮기도록 하려면경쟁력 가로막는 규제 없애고다양한 금융인프라 구축해야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400년 후에 브렉시트(EU탈퇴)를 단행한 후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당시 '오셀로'와 '맥베스', '리어왕' 등 궁중에서 드러난 권력의 오만, 투쟁 그리고 욕망의 허무를 통해 영국의 서민들이 왕실과 사회를 조롱하도록 만든 뛰어난 사회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돈 버는 비즈니스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경영자일 뿐 아니라 극작을 통해 서민들의 시름을 보듬어 준 사회의식이 깊은 대문호였다. 경영자로서의 셰익스피어는 아마 금융허브인 런던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EU잔류를 택했을 것이다. 반면 서민 옹호자로서의 셰익스피어는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에 대한 강한 향수와 유럽대륙에 대한 우월주의를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EU탈퇴에 동조했을 것이다.버밍엄대학 마틴 파월교수는 브렉시트를 14세기 농민반란의 현대적 재현이라고 했다. 당시 가혹한 세금과 흑사병으로 시달리던 농민들이 봉기해 런던을 점령하고 캔터배리 대주교와 재무장관을 살해한 사건이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요즘 시대의 서민들은 반란 대신 투표용지에다 자신들의 화를 내뱉는다. 그 결과가 브렉시트로 나타난 것이다.영국인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EU가 영국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는 꼴을 보기 싫었던 것이다. 이로써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국민들은 신고립주의와 탈세계화의 흐름 속에 스스로를 내던진 것이다.런던은 세계금융의 중심지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금융허브인 런던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런던이 브렉시트 이후 반세계화라는 커다란 역류의 중심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찰스 킨들버거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는 일찍이 금융도시로 반짝했다가 사라져 간 도시를 조망하고 있다. 메디치 가문이 장악했던 피렌체와 베네치아, 밀라노 등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은 15세기 금융을 지배했었다

  • [자치단상] 저출산 극복, '엄마'가 행복한 정책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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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단상] 저출산 극복, '엄마'가 행복한 정책 필요할 때 지면기사

    부천시, 출산율 '1.07명'… 도내 31개 시·군중 꼴찌구청 폐지로 40억 예산 절감돼 '아기환영정책' 숨통엄마들 걱정 없도록 보편적 복지체계 재정비 필요최근 저출산 위기극복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보완대책 발표가 있었다. 난임부부 지원을 골자로 하는 신생아 수 늘리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단기처방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예산이 80조원을 상회하고 올해 예산만도 20조원이 넘지만 갈수록 신생아 수가 감소하고 있어 저출산의 심각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부천시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부천시는 출산율 1.07명으로 경기도 31개 시군 중 31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전국으로 따져도 서울의 몇몇 자치구를 제외하면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중앙정부 대책 발표에 앞서 지난 8월 23일 부천시도 지방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다자녀의 기준을 기존 3명에서 2명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출산 지원금을 둘째아이부터 대폭 늘려 둘째아 100만원, 셋째아 200만원, 넷째아 이상 30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는 수도권 최상위 수준이다. 이렇게 하여 소요되는 예산만 최소 연간 4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지난 7월 '구청폐지'라는 행정혁신을 통해 매년 절감되는 40억원 정도의 운영비를 절감한 돈으로 부천형 아기환영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가닥 위안을 삼을 수 있다. 부천시는 출산율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직접지원과 함께 출산 후 아기 키우기는 물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직·간접 방안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임산부와 신생아에 대한 건강 및 육아 지원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 등 보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다자녀 가정에 대한 다양한 지원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정책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9월 1일 부시장 직속으로 '인구정책추진단'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내년 1월 정식기구로 발족할 예정이다.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시민과 육아의

  • [발언대] 우리곁에 있는 통계, 적극 활용하자
    칼럼

    [발언대] 우리곁에 있는 통계, 적극 활용하자 지면기사

    "세상에는 3가지의 거짓말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실한 통계를 사용하거나, 정확한 통계라도 오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통계 자체에 대해 불신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진행하는 조사에 불응하는 응답자 유형 중 통계의 정확성에 불신하는 유형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인용하는 사람 중 누구도 통계 자체를 아예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통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출처, 조사방법 등 세부내용을 검토하고, 쟁점을 벗어나거나 숨겨진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따지라고 한다. 부실하고 잘못 사용된 통계는 큰 해가 되지만, 올바르고 정확하게 사용되는 통계는 국민, 기업, 국가에 든든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9월 1일은 '통계의 날'이다. 우리나라 근대 통계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있는 '호구조사규칙'이 최초로 제정된 1896년 9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통계청은 통계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제고와 국가통계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1995년부터 기념행사를 진행해 왔고,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9년부터는 정부기념일로 격상되었다. 이렇듯 통계에 대한 중요성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통계작성기관에서도 빅데이터 활용, 새로운 통계조사기법 개발 등 정확한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통계작성기관에서 노력하여 작성하고, 많은 국민이 성실히 응답하여 잘 만들어진 통계라도 활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막연하게 통계는 어렵다는 생각과 자신과는 관련 없다는 생각 때문에, 국민 대부분은 통계는 단순히 국가 또는 기업에서만 활용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통계청에서는 국민들이 유용한 통계를 편안하게 쓸 수 있도록 많은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통계정보와 지리정보를 융·복합하여 제공하는 SGIS(통계 지리 정보서비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예전에는 상권분석이라고 하면 전문컨설팅 회사나 카드사에서만 하는 전문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SGIS의

  • [기고] 경기도 문화 르네상스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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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경기도 문화 르네상스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지면기사

    경기도 민선 6기 도정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문화융성'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도는 서울농생대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여주 반려동물 테마파크, 광주 스포츠밸리 추진 등 나름대로 '문화융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는 있다. 일견 기존부지 활용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문화콘텐츠를 부가적으로 접목시키는 것에 그친다는 지적과 문화 르네상스를 위한 정책 콘셉트가 부족하고 문화 비전이 없다는 평가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경기도의 문화재 보존 및 복원 사업도 겉돌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도에는 모두 1천2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9점의 국보와 142점의 보물, 천연기념물 19점, 국가무형문화재 10점, 중요민속문화재 22점을 비롯해 유형문화재 252점, 무형문화재 51점, 기념물 182점, 민속문화재 12점 등 시·도 지정문화재도 있다. 그런데 경기도의 도 지정 문화재 보수 정비 예산은 지난해 62억원에서 올해 4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도내 시·군에서 요청한 문화재 보수정비 예산 123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문화재 개보수는 매년 증가하는데 보수 예산이 지속 감소돼, 일상 관리가 미진해 정비 대상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더욱이 도의 문화 관련 예산은 전체 예산 중 1.74%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국 시·도 평균인 3.52%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2%를 넘지 못해 각종 문화 분야의 정책 실현 및 인프라 구축은 물론 경기도 문화 르네상스를 열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는 넋두리가 나올 법도 하다. 실태를 한번 살펴보자. 정조 임금이 1797년에 축조한 경기도 기념물 제161호 '만년제' 복원 사업은 지난 2012년 509억원의 복원·정비사업을 계획했으나 현재 예산이 없어 착공조차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2014년 문화재청 특별점검에서 D등급을 받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경우 예산 뒷받침이 안돼 성곽이 파괴·유실되고 있다는 지적도 부끄러운 일이다. 문화재 보존과 복원은 우리 민족의 전통과 얼을 보존하고 정체성

  • [월요논단]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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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지면기사

    나라가 바르면 민심 순후하고관청이 맑으면 백성 편안해지듯국민들이나 공직자 모두가법률 위반여부 따지기 전에밝은 양심과 청렴한 소신선공후사의 정신 지키는게 중요2016년 9월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 출신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2011년 제안해 2015년 3월 제정 공포된 이 법은 공무원·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을 포함하는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을 주고받는 다양한 행위유형을 금지하고 위반자를 벌함으로써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시장경제를 바탕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공직 수행의 청렴성 못지않게 일반 국민의 자유로운 언론·집회·교류 특히 대관(對官) 업무에서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 부정청탁금지법에 명시된 금지행위 유형과 처벌 조항은 포괄적이면서도 세세하고 엄격하여, 경우에 따라 국민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까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청구의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2016년 7월 28일 부정청탁금지법의 모든 쟁점에 대해 합헌 판정을 내렸다. 쟁점 조항은 법 적용대상인 공직자에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포함한 조항, 부정청탁의 개념과 유형을 규정한 조항 및 그 예외사유를 규정한 조항, 배우자 금품수수 신고의무 조항, 처벌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한 조항 등이다. 주요 쟁점 중 언론인 및 사립학교 관계자 포함 여부에 관해서는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효과가 커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반면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공직자에 포함시키는 조항이 헌법에 합치된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법률 상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나 사회단체가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정책운영 등의 개선에 관한 제안과 건의 등 공익적 활동은 예외적으로 허용하는데, 이는 국민의 고충민원 전달창구로서

  • [시인의 연인] 처서(處暑)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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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연인] 처서(處暑) 지나고 지면기사

    처서 지나고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한밤에 또 내린다.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새로 한 번 젖는다.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김춘수(1922~2004)성장기가 지난 사람은 더 이상 자라지 않듯이 자연의 풀도 '처서 지나고' 성장이 멈춘다. 처서는 뜨거운 시간을 지나온 여름의 끝이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시작이다. 끝과 시작의 모퉁이에서 사물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저녁, 가랑비가 내렸다.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있든지 없든지 처서 이후에 비를 맞았다. 이제 비를 맞는다고 해서 그것들의 차지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가을빛으로 물들며 떨어져 내릴 것이다. "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도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메아리처럼" 다시 돌아갈 그때가 지금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해지는 이 시간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젖어가듯 세상에 당신이 피워낸 '초록의 욕망'도 소리 없이 가랑비에 풀이 죽는다. '귀뚜라미 무릎'까지 차오른 가랑가랑한 죽음을 보면 가야할 길이 그렇게 멀지 않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신도,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성장이 멈춘 처서에 들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김춘수(1922~200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한여름 정열적인 자태 뽐내는 배롱나무
    칼럼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한여름 정열적인 자태 뽐내는 배롱나무 지면기사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폭염도 한풀 꺾이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고 있다. 꽃이 흔하지 않은 한여름 뜨거운 태양보다 더 화사하게 피어나 붉디붉은 정열적인 자태를 한껏 뽐내는 나무, 무궁화와 함께 여름 꽃나무를 대표하는 배롱나무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소 교목으로 높이가 약 5∼6m까지 자란다. 나무 전체는 넓게 퍼지는 둥근 타원형으로 줄기는 전체적으로 연한 갈색이나 껍질이 벗겨진 자리는 매끈하고 백색이다. 특히 줄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고풍스러움과 멋스러움을 더해 가는 특징이 있다. 잎은 마주나며 타원형이나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다. 꽃은 7월부터 9월까지 가지 끝에서 원추꽃차례에 붉은색·보라색·흰색으로 피고, 꽃잎은 꽃받침과 더불어 6개로 갈라지는데 끝이 주름이 졌으며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피고 진다. 꽃말은 '부귀'이며 흰 꽃은 향기가 좋고 꿀이 많아 여름철 밀원식물로 인기가 높다.배롱나무는 토양이 비옥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 약해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해 보온시설을 해주어야 하나 공해와 건조에는 강한 편이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해서 백일홍나무 또는 목백일홍(木百日紅)으로도 불린다. 한글이름인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가 구전되면서 소리 나는 대로 '배기롱나무'로 발음되다 시간이 지나 '기'자가 빠져 배롱나무가 되었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 배고팠던 시절 꽃이 질 때쯤 벼가 익는다 해서 쌀밥나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부르는 '저금 타는 낭'도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으로 배롱나무를 말한다. 일본에서는 나무줄기가 매끄러워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 '사루스베리'로 부른다.배롱나무는 나무의 수형도 아름답지만 꽃이 피는 기간이 길기때문에 예로부터 정원수로 각광을 받았다.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파한집'이나 '보한집'에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세

  • [춘추칼럼] 터널 앞에서
    칼럼

    [춘추칼럼] 터널 앞에서 지면기사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기억 '주체' 아닌 '대상'에 불과그 고통 얼마나 참혹한지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몰라누군가의 터널속 어둠 되지 않으려면 정신 차리자김성훈 감독의 '터널'은 많은 장점을 가진 영화다.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를 더 많은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가장 적합한 화법이 무엇일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보다도 그의 아내 '세현'(배두나)이 나오는 모든 장면이 나에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터널 안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닌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터널 안팎의 고통이 모두 그녀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가장 안타까워 보였다. 터널 밖의 고통과 분노에 떠밀려 그녀가 결국 터널 안의 남편을 포기하기로 결단하는 '마지막 방송' 장면을 나는 지금도 떠올리고 있다.그런데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계속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35일 만에 구출된 정수가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퇴원해서 아내와 자동차로 귀가하는 장면. '이송'에서 '퇴원'까지 실제로는 긴 시간이 흘렀겠지만 관객들은 불과 몇 분 만에 멀끔해진 정수를 보게 된다. 그 사이 건강해진 정수의 너스레는, 조금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했다. 그런데 그가 사고 이후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가는 장면을 보여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물론 정수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결국은 통과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정수가 퇴원하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고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감독의 의도는 트라우마의 집요함을 강조하자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장면이 내게는 오히려 반대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다시 터널로 들어갈 수 있는가. 나라면 다시는 터널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터널의 시커먼 아가리가 저 멀리 보이는 지점에까지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