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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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통령과 포토라인 지면기사
1995년 12월 2일 아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했다.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데 따른 입장이었다. 그는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로 종결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려 한다"며 "검찰의 태도는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소환요구 및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조사를 피했다.검찰청사가 아닌 국립묘지에 들렀다, 그 길로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5촌 조카의 집에 머물던 전 전 대통령은 밤 11시께 잠시 나와 측근들과 친척, 지역민들에게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들어갔다. 한때 체포조의 진입이 시도됐으나 호위대가 대문을 굳게 닫고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자정을 넘어서도 대치가 계속됐다. 담장 위에서 '뻗치기' 취재를 하던 월간지 기자가 독백처럼 말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3일 새벽 5시께 의경들이 대문 앞에서 호송차까지 2열로 늘어섰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방으로 갔고, 잠시 뒤 전 전 대통령이 모습을 보였다. 검은색 외투에 중절모, 흰색 목도리 차림으로 '수고한다, 미안하다'며 일일이 악수한 뒤 문밖으로 나섰다. 호송차량은 5시간을 달려 안양교도소에 멈췄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5번째로 검찰 소환을 받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3대가 잇따라 불행한 처지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했다. 정치 보복이란 생각을 에둘러 전한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경기를 관람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경기를 보면서도 심경은 복잡했을 듯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만 바라는 것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상투적 발언이라지만 가장 크고 또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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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빨간 호랑이의 부활 지면기사
지난해 5월 타이거 우즈가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됐다.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 구치소 신세가 됐다. 면도를 안 해 덥수룩한 수염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 자포자기한 듯한 표정이었다. '골프 황제'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는 몰골이다. 금지 약물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사생활 문제가 겹치며 선수 생활이 불투명했다. 언론은 '42살이 된 우즈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팬들은 천재 골퍼의 끝없는 추락을 지켜봐야 했다.타이거가 다시 포효했다. 지난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올랐다. 비록 1타차로 우승을 놓쳤지만 2015년 8월 윈덤챔피언십 이후 2년 7개월여 만에 첫 '톱 10' 진입이다. 대회 마지막 날 '공포의 붉은 셔츠'를 입고 나와 파4 17번 홀에서 13m짜리 장거리 퍼트를 집어넣었다.그의 부활은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경기력 지수가 골고루 좋아졌다. 3라운드 14번 홀에서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는 시속 129.2마일(207.9㎞)이었다. 올 시즌 PGA투어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빠른 스윙 스피드다. 327야드(299m) 떨어진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3라운드 그린 적중률은 77.78%에 달했다. 전성기인 2000년 75.15%의 그린 적중률로 PGA투어 전체 1위를 기록했던 것을 능가하는 수치다.브랜트 스네데커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전성기 시절 타이거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조던 스피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우즈를 보면서 골프를 했다. 우상인 그와 대결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 설렌다"고 했다.팬들도 돌아온 골프 황제를 극진 예우했다. 대회기간 현장을 찾은 팬들은 전년보다 40%나 급증했다. 로리 맥길로이, 조던 스피스, 더스틴 존슨, 저스틴 토마스는 늘 황태자일 뿐이다.팬들의 시선은 벌써 4월 마스터스 대회로 향한다. 언론은 그를 마스터스 우승 확률 1위에 올려놓았다. 그린 재킷을 입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다. 황제의 귀환에 화들짝 놀란 골프팬들의 가슴이 부풀고 있다.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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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독살(毒殺) 지면기사
알렉산드로 리트비넨코. 2차 체첸전쟁을 촉발시킨 모스크바 건물 폭탄 테러가 러시아 정부 내부의 불만과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KGB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FSB(KGB의 후신) 요원. 내부고발자인 셈이다. 그가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한 것은 2006년 11월 '폴로늄 210'이라는 방사성 독극물에 의해 사망하면서다. 이 물질이 섞인 차를 마신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3주 만에 숨졌다. 죽기 직전 머리털이 모두 빠진 채 앙상한 그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세계인에게 충격을 던졌다. 사인을 10년간 조사해 온 영국 정부는 러시아를 배후로 생각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증거가 없었다. 물론 러시아는 '모르쇠'로 일관했다.리트비넨코의 절친 안드레이 네크라소브 감독은 2007년 그의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리벨리온(rebellion)'을 만들었다. 생전의 리트비넨코 인터뷰를 중심으로 가족과 주변 인물 등의 증언을 담았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리트비넨코를 독살했다고 주장하는 킬러와의 인터뷰도 삽입했다. 그래도 러시아는 꿈쩍도 안했다.독극물로 인한 암살은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78년 영국 런던에 망명 중인 불가리아 반체제 인사 게오르기 마르코프 사건. 그는 출근 버스를 기다리던 중 우산 끝에 찔린 뒤 나흘 만에 사망했다. 부검에서 KGB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리친'이란 독성물질이 발견됐으나 그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지난해 2월 북한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로 살해당했다.영국과 러시아가 한 이중 스파이의 독살을 두고 심각한 외교분쟁을 겪고 있다. 지난 4일 영국의 솔즈베리 한 쇼핑센터 벤치에서 전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대령 출신인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이 맹독성 신경가스로 독살됐다. 영국정부는 러시아의 소행임을 확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메이 총리는 경찰 수사를 통해 범행의 배후가 확인될 때까지는 이번 사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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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햄버거 회담 지면기사
2016년 미대선 유세중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협상을 할 것이다"라고 허풍처럼 공언했던 미 트럼프대통령의 발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는 거 봐서'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미·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봄' '한반도 평화의 대 전환점' 등 언론은 일제히 희망 메시지를 쏟아냈다. 하지만 갈등을 겪는 국가 정상들의 회담은 성사부터 결과까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1959년 9월 25일 후르시초프는 미국을 전격 방문해 아이젠하워를 만났다. 2차 세계 대전 후 으르렁거리기만 했던 정상들의 첫 회담이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후르시초프는 다음해 파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만남은 1961년에 가서야 빈에서 이뤄졌다. 아이젠 하워가 케네디로 바뀌었을 뿐, 양국 정상은 혹독한 냉전체제의 현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후 미·소관계는 쿠바 위기까지 겪으며 더욱 더 냉각됐다.닉슨이 미 대통령 신분으로 처음 소련을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에야 이뤄졌다. 그 후 17년이 지난 1989년 몰타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만나 냉전구도의 종언을 선언했다. 이 역시 동구권의 몰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결과를 끄집어 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우리도 갈 길은 멀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 준비 없는 회동으로 북한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의 소리도 높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낸 에반 메데이로스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가지고 놀더니 이제 트럼프 대통령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트럼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7년 출간된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이다. 책대로라면 그는 협상의 달인 아닌가. 지난 세월 미국의 외교적 실패 사례들을 정치가들이 바보스러웠다는 사실에서 찾는 트럼프다. 회담장 테이블에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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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지방선거와 미투(#Me too) 지면기사
정치는 생물이라더니 화석처럼 단단했던 더불어민주당의 6·13 지방선거 승리 구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추문과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피해 여성들의 '미투(#Me too)'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면서다. 문화계 진보 권력을 강타한 미투 운동의 폭심(爆心)이 여권으로 이동하면서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의심이 깊어지고 있다. 민심의 동요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민주당은 또 다른 가해자가 나올까 전전긍긍이다. 자유한국당은 진보진영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한다. 촛불과 탄핵 이후 갇혔던 수세국면을 반전하려는 기색이다.미투 운동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방선거 현장을 자율규제하는 조짐도 뚜렷하다. 각종 전과 기록 보유자들도 서슴없이 공천경쟁에 뛰어드는 지방선거 풍토가 미투로 인해 싸늘해졌다. 기록은 변명할 수 있어도, 추악한 행적이 들통나는 일은 아무리 철면피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다. 후보들 사이에 성폭력과 관련한 자기 검증이 한창이란다. 출마를 공언했다 발을 빼는 후보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는 후문이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후보들은 여성 유권자와의 스킨십 수준을 고민하고, 여성을 앞세운 선거 캠페인을 포기하는 등 선거운동 행태의 변화도 감지된다.미투 운동이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운동의 본질이 훼손될까 걱정이다. 정치는 현안의 본질을 왜곡, 조작하기 일쑤다. 여야 정치권의 선거캠페인으로 전락하고 득표용 전술로 소비되는 야만적 상황에 휩쓸리는 순간, 미투 운동은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권력에 이용당하는 역설에 직면한다. 공개적으로 수치를 무릅쓰고서 폭력의 기억을 소환한 미투 여성들에겐 잔인한 일이다. 정치인 안희정과 정봉주로 표적이 이동하는 동안 시인 고은은 외신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문제의 신부님은 고해성사 없이 잠적 중이다.미투 운동의 본질은 남성 권력의 여성 가해 역사를 종식시켜, 모든 권력의 어떠한 폭력도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열자는 시대전환의 요구다. 여야 없이 미투 이후의 세상을 고민하고 설계해야 할 때다. 미투 운동의 지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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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지면기사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했다. 한반도의 허리가 끊긴 뒤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간 첫 만남이다. 큰 형님격인 김 대통령을 깍듯하게 대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07년 10월에는 역시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2차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의 호방한 웃음과 시원한 말투가 화제가 됐다.김 대통령 방문길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사 대표들도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남측 언론사 대표들과 팔짱을 끼는 등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경인·부산·대구매일·광주일보 4개 지방지 사장들도 함께 갔는데, 제외된 지방지들이 반발하면서 청와대 홍보실이 곤경에 처했다. 일정이 끝난 뒤에는 4개사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왕따'를 당하는 후유증을 남겼다. 노 대통령 때는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동행했다.북한을 다녀온 특사 일행이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다. 만남의 장이 평양이 아닌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이라고 한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게 된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 병사가 5발의 총탄에 맞고서도 이곳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1·2차 회담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우리 정부가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북에 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은 이 돈을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3차 회담을 앞둔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명확한 의제를 논의한다. 평양이 아닌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 250m 지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무대 공식 데뷔전이다. 미북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이다. 김정은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밝혔다. 북한 옥죄기에 주력해온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도 일단 긍정적이다.김정은 위원장은 방북 특사 일행을 정중히 맞이했다. 만찬 뒤에는 차를 타고 떠나는 일행을 끝까지 배웅했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한반도의 봄기운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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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국제여성의 날'과 미투(Me Too) 지면기사
올 초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로 25명 넘게 숨졌다. 4만2천명이 시위에 참여해 2009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다. 실업과 물가 폭등과 같은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규탄하며 시작됐으나 최고 지도자와 기득권을 쥔 종교세력, 신정 일치 체제에 반대하는 주장으로 번졌다. 제2의 '아랍의 봄'이란 전망이었지만 기세가 한풀 꺾였다.시위에서 주목받은 건 여성들이다. 하얀색 히잡을 벗어 장대에 매달아 흔드는 여성의 SNS 영상은 반정부 시위의 상징이 됐다. 비다 모하베드라는 31세 여성은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이란 현행법에 맞서 시위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를 따라 히잡을 벗은 시위 여성이 늘고 있다.히잡은 이슬람권 여성들의 열악한 인권 현실을 대변한다.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며 얼굴을 가리도록 했다. 여성의 자존감과 인격체로서의 주체 의식은 안중에도 없다.히잡을 벗자는 움직임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한 중동 국가로 번지고 있다. 중동은 이제 민주화와 여성인권 신장이란 2개의 혁명 축이 가동되는 양상이다.8일은 국제(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위한 기념일이다. 1904년 3월 8일 뉴욕에서 열린 사회주의 여성 동맹의 여성 참정권 요구가 시작이었다.마침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폭로는 충격을 넘어선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비서는 "(안 지사가) 미투 얘기하며 미안하다 말하면서 그날 또 그랬다"고 주장했다. 안 지사는 직원들에게 "미투 운동은 남성 중심적 성차별의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며 "인권 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출당·제명하기로 했다. 정치판과 차기 대선 구도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사건이다.예년 같으면 덤덤했을 여성의 날이 올해는 별나게 다가온다. 화성을 탐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세상인데도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는 여전하다. 히잡을 벗어 던지고, 미투할 일이 없는 세상은 가능한 것인가.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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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지면기사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찾는 이들에게 책을 무료로, 또는 정가에 비해 싸게 줄 수가 없다. 무료 기부행위로 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가보다 책값을 더 내는 것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금으로 10만원을 내든 100만원을 내든 신용카드를 긁든 내는 사람 맘대로다. 더구나 출판기념회때 거둬들이는 수익은 신고 의무도 없다. 정치인 출판기념회 책값은 선거법과 김영란 법을 교묘히 비켜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신이 났다.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무한대로 모을 수 있다. 초청 인원 제한규정은 아예 없다. 유권자들이 제발로 찾아 오고, 거기에 정가보다 비싸게 책도 사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꿩먹고 알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인들이 누리는 최대 '특권'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에 목숨을 건다. 더러 세 과시용으로도 이용된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인들도 출판기념회가 민폐에 적폐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부적으로 출판기념회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낯간지러웠던지 지난 19대 국회때 출판기념회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고 수입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며 출판기념회 횟수를 제한하자는 '국회의원 윤리실천특별법안'과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유야무야 하다가 폐기됐다. 20대 국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에서도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는 개선책을 내놨지만 그 이후는 감감 무소식이다.이번 6 ·13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려면 3월15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선거 90일 이전에는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같은 날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는 3월10일 토요일이 그런 날이다. 말 그대로 '슈퍼데이'다.독서율 꼴찌인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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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북 특사 지면기사
적대적 남북관계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돌발적 해빙무드가 조성된 것은 특사외교의 성과였다. 1972년 5월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특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가슴에 청산가리를 품고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면담했다. 동시에 북한에서는 부주석 박성철이 서울에서 박 대통령과 만났다. 극비리에 성사된 남북 특사 교환의 성과는 남북이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공동성명 발표로 공개됐다. 서울과 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 이후 남북관계를 관리할 조치들도 뒤따랐다.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한 남북 독재 정상이 벌인 이벤트는 남북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됐다는 혹평에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한 첫 남북합의라는 역사적 의미가 가볍지 않다. 또한 공동성명의 기본합의는 이후 남북합의의 기초로 활용될 만큼 남북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실제로 남북 특사외교를 통해 재개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성안된 남북합의서인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김정일)'과 '10·4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노무현-김정일)' 모두 기본합의는 7·4 공동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문재인 정부가 5일 대북특사를 파견한다. 이번 특사는 이전의 대북특사와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전혀 다르다. 이전 특사들은 남북 평화공존과 같은 관념적이고 기본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남북 통치 수반들의 소통과 만남을 성사시키는 임무에 그쳤다. 반면에 이번 특사단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 미·북대화의 실마리를 잡아내야 한다.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는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이다. 우리 특사단에 쥐어보낼 메시지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특사단이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김정은을 면담할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특사단과의 면담으로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테고, 면담마저 불발되면 또 그 자체로 한반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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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국인, 멸종위기보호종? 지면기사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4년 한국인이 700여년 후 멸종위기를 맞는다는 수학적 예측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담긴 한국인 멸종 시나리오는 이랬다. 당시의 합계출산율 1.19명을 유지할 경우 부산은 2413년, 서울은 2505년 마지막 아기의 탄생을 끝으로 신생아의 고고성이 사라지며, 2750년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대한민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지목한 때가 2006년이다. 모두 저출산의 저주에 걸린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종이었다.현재의 위기엔 민감하지만 미래의 위기엔 둔감한 법. 한국인 멸종 경고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도 예외는 아니다. 7세기 후의 멸종을 체감하기 힘드니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비극을 농반진반 술자리 안줏거리 화제 정도로 소비했다. 그러는 사이 경종의 음량은 깊고 묵직해졌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17년 출생·사망통계가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 2.1명의 딱 절반이자, 2016년 1.17명 보다 10.3% 급감한 수치다. 2750년 멸종의 전제였던 1.19명보다는 11.8%가 떨어진 셈이니, 한국인 멸종 시한도 훨씬 앞당겨 수정돼야 할 지경이다.따지고 보면 먼 장래의 위기도 아니다.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이 이어지면 인구정점 시기도 2031년에서 2027년으로 당겨진다니 10년 안에 저출산의 저주가 현실로 닥쳐올 수 있다. 노령인구는 급증하고 일할 청년은 사라지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을 것이다. 좌·우파 정부가 경쟁적으로 약속했던 현재의 복지혜택은 한 세대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한민족 멸종이야 먼 미래의 비극일지라도, 비극의 정점을 향할 때까지 겪어야 할 고초와 불행은 우리 세대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몇백년 후 한민족이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쇠락해 국제사회의 보호, 관찰 대상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만하면 전국 주요도시에 한국인 멸종시점을 자정으로 맞춘 운명의 시계탑을 세워, 초저출산 민족의 디스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