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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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마시모 자네티의 '경기 필' 지면기사
세상에 크고 작은 권력과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칭찬의 상투적인 비유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자주 인용된다. 단원을 일사불란하게 장악하고 차이나는 연주능력을 조율해 자신만의 색을 가진 화음을 실현하는 지휘자를 이상적인 리더십의 전형으로 인식한 덕이다. 실제로 지휘자와 단원이 따로인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은 끔찍하다. 갈등의 확대재생산이 특기인 한국 정치가 지휘자도 악보도 없는 망가진 오케스트라로 조롱받은지 오래거니와, 리더십이 실종된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은 이에 꼭 들어맞는 형국 아닌가.훌륭한 지휘자의 리더십에도 유형은 있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빈 메타는 단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리카르도 무티는 강력한 장악력으로 단원들을 지치게 한 모양이다. 2005년 라 스칼라 오페라 단원들이 "당신은 위대한 지휘자"라면서도 자신들을 파트너가 아닌 악기로 사용한다며 사임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들도 독보적 카리스마로 베를린 필의 종신 독재자로 유명했던 카라얀의 명성엔 못미친다. 하지만 지휘계의 황제로 칭송받던 그도 30년 전횡에 지친 단원들의 반발에 몰려 물러났으니 독재의 말로는 늘 이렇게 처연하다.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7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를 영입했다. 베버와 바그너가 활약했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했을 정도로 오페라에 정통한 인물이다.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경기 필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젊은 오케스트라이고, 나에게도 굉장한 기회"라고 의욕을 보였다. 창단 이후 경기 필은 관립의 한계와 열악한 공연시설, 취약한 클래식 저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히 젊은 여성지휘자 성시연의 활약과 무티와의 협연으로 국내외 공연계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경기 필이 자네티를 통해 전통과 현대, 장르를 종합해 특별한 개성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물론 행정편의적인 지원에 머물러 있는 관립 운영체제의 혁신도 필수적이다. 서울시향의 정명훈 사태에서 보듯, 경영과 예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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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잿빛 미세먼지 대책 지면기사
1952년 12월 4일. 아침 날씨는 화창했다. 바람 한줌 없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800만 런던시민의 석탄 사용량이 급증했다. 질 낮은 석탄이 뿜어내는 유황성분 가스는 그저 허공에 맴돌았다. 지면 근처의 대기 온도가 상층보다 낮은 기온역전현상때문이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면,그리고 바람이 불었다면'이라는 가정법은 아무 소용없었다.이미 참사는 시작됐으니 말이다. 다음날이 문제였다. 매연(smoke)과 안개(fog)가 런던을 덮쳤다. 가시거리 0 . 짙은 안개에 익숙한 런던 시민들은 끔찍한 상황도 모른 채 안개로 축구 경기가 취소 될까봐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충돌 사고가 일어났다. 얼마나 안개가 심했던지 실제로 길잃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병원에는 호흡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됐다. 그날 1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12월까지 4천명이 죽고 다음해 후유증으로 8천명, 모두 1만2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제 경인일보 2면에 실린 '미세먼지· 안개에 묻힌 송도' 사진은 충격이었다. 1952년 런던스모그 사진과 너무나도 흡사해서다. '잿빛 공포에 갇혀버린 시민 일상'이라는 헤드라인도 가슴에 와닿는다. 이제 미세먼지는 우리가 피할수 없는 생활의 일부가 된듯하다. 우리 스스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 마스크도 챙겨야 한다. 4~5월에 더 심해진다니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러다 우리 생애에 수채화처럼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스모그가 사라진 후 사망한 사람은 독감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듬해와 비교해 사망률이 4배 늘어났다는 것을 발견한 후,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끼고 비로소 규제에 들어갔다. 대기오염방지법이 제정되고 부랴부랴 벽난로 사용을 금지 시켰다. 큰 대가를 치르고야 정신을 차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제라도 정부는 연료정책과 배출가스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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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봄이 온다'(?) 지면기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려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전역에서 대한민국 문화콘텐츠가 암시장을 통해 번지는데 대한 경고로 해석됐다. 북이 한국 대중문화를 '날라리 풍'으로 배격하는 데는 자유로운 기풍이 체제위협의 비수로 변할까 걱정해서다.대한민국 예술단의 4월 1, 3일 두 차례 평양공연이 주목받은 이유다. 4월 남북, 5월 미북정상회담을 앞둔 축하사절의 성격인 만큼 남측 예술단 공연장에서 보여줄 그들의 반응은 단순히 공연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과 평양공연 제목을 '봄이 온다'로 작명한 것도 공연 이후 전개될 3각 정상회담에 걸린 희망과 기대의 반영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핵심 문화참모 아닌가. 정치 이벤트 성격이 짙은 평양 공연이지만, 한반도에 봄이 오는 계기이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최근 트럼프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한데 이어 존 볼턴을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에 내정했다. 둘 모두 대북 강경파이지만, 특히 볼턴은 북한 선제공격론을 앞장서 주장했던 대북 초강경 매파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볼턴만큼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고 걱정이고, 워싱턴포스트도 "볼턴의 북한에 대한 전쟁 옹호 발언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는 미·북 정상회담을 침몰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볼턴 변수로 인해 남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상대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는 트럼프의 협상술과 사무실 책상에 핵단추를 올려놓았다는 김정은의 벼랑끝 외교술이 어떤 결과에 이를지, 착잡한 시절이다. 평양공연 '봄이 온다'가 역사적 남북미 정상회담의 화려한 개막공연으로 삼각 정상들의 마음을 녹여내길 바란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세 정상의 회담이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거쳐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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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새마을 기 지면기사
새마을 기의 녹색은 '녹색혁명', 황색원은 협동과 부(富),무한한 가능성을 표시한다. 녹색의 잎과 싹은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최순실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해 전국의 각 구청 민원실엔 새마을 깃발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랐다. 지난해 9월 20일 수원 영통구청에 원천교에 설치된 새마을기 12개를 내려달라는 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다. 기를 훼손하는 일도 벌어졌다. "새마을 기를 보면 유신 독재가 생각난다"는게 이유였다. 실제 광주광역시는 지난 1월 새마을기가 "유신 잔재 논란이 있고,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시민 단체의 요구를 받아 들여 시청·구청·기초의회 청사에서 새마을 기를 모두 내렸다. 이재명 전 성남 시장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14일 뒤인 5월1일 새마을 단체에 양해를 구하고 성남시청 새마을 기를 내렸다. 그 자리에 노란 세월호 깃발을 게양했다. 경기도내 31개 시·군 청사에 새마을기가 사라진 곳은 성남시가 유일했다. 경인일보 21일자 경기판 23면에는 성남시청 광장에 4년만에 새마을기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이재명 전시장이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지난 14일 사임한 후 시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재철 부시장이 재 게양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제4회 우간다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다. 왼쪽 가슴에 한글로 선명하게 '새마을'이라고 쓴 초록색 새마을 옷을 입고 있는 우간다 새마을 지도자들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우간다는 현재 30여 개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과 지도자 연수원까지 있을 정도로 새마을 운동에 푹 빠져 있다.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의 열렬한 신봉자다. 그는 2015년 유엔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이뤄진 르완다의 고도성장은 한국의 새마을운동 덕분"이라고 연설까지 했다. 인종청소 대량학살로 유명한 르완다는 예전 악몽을 딛고 연 평균 8%라는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는 나라가 됐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공무원,학생,농민들은 새마을 운동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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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반갑다 야구야 지면기사
봄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들뜨기 마련이다. 사람도 그렇다. 콧구멍으로 봄바람이 들어가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춘분에 쏟아졌던 눈이 3월 대설이라는 기록을 세워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떠나는 겨울의 마지막 용틀임도 봄 앞에선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해야 한다. 봄이다. 이제 대지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온갖 꽃들이 내뿜는 향기로 숨이 막혀 버릴 것이다.꽃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봄을 그토록 기다린 이유는 또 있다. 지금 수원과 인천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그 이유, 야구 때문이다. 봄은 야구와 함께 온다. 야구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장장 5개월의 동면(冬眠). 야구가 없어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었다. 스포츠 중 시즌 오픈과 한 해의 시작이 맞아 떨어지는 종목중 야구가 대표적이다.내일 2018 프로야구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린다. 예년보다 2주일이 빠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때문에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리그를 잠시 중단하기 때문이다. 시범경기가 총 40경기로 축소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해 꼴찌였던 수원 kt위즈에 큰 변화가 왔다. 우선 황재균이 11년 만에 수원구장으로 돌아왔다. 2007년 그는 현대 유니콘즈의 유니폼을 입고 수원 야구장에서 2번 타자 유격수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또 있다. 두산의 에이스였던 더스틴 니퍼트도 kt유니폼을 입었다. 초대형 신인 타자 강백호도 데뷔전을 치른다. 타자 라인업만 따지면 국내 최고다.왼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하고 2년 만에 돌아온 인천 SK 와이번스 김광현은 머리를 삼손처럼 길렀다. 그의 위력투가 그 머리카락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와 닮았다. 여기에 메릴 켈리, 앙헬 산체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에이스급 세 명의 투수로 선발진을 꾸렸다. "무슨 야구를 갖고 그러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야구는 축구를 제치고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지난해 무려 840만688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골치 아픈 국내·외 복잡한 문제들을 잠시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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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뉴미디어의 디스토피아 지면기사
모이제스 나임이 '권력의 종말'에서 언급한 대로 '모두가 보도하고 모두가 결정'하는 미디어 홍수의 시대다. 누구든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앱을 여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수백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SNS 리더들은 실제로 신문, 방송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에서 뉴욕타임스 등 진보적인 전통 미디어에 자신의 트위터로 맞서더니, 얼마전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트위터 메시지로 해고해 화제가 됐다. 4천700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트럼프는 걸어다니는 거대 미디어다.30억명 이상의 세계인이 SNS에서 소통하는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 시대가 가능해진 건 기술 혁신 덕분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구글의 검색엔진을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에서 메시지를 발신하는 세상이 열리는데 한 세대가 안 걸렸다. 반면에 페이스북 같은 기술 기업들이 엄격하게 작동됐던 미디어 윤리규범을 전복하는데 따른 논란은 이제야 한창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확장 등 장점을 앞세우는 낙관론과 SNS에 유통되는 개인정보를 독점한 '빅브라더'의 출현을 우려하는 비관론이 교차한다.묘한 시점에 페이스북이 대형사고를 쳤다. 정치 컨설팅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5천만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가공해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사용했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당일에만 39조원의 시가총액을 날렸다. CA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닉스는 고객을 가장해 잠입취재에 나선 영국의 한 언론에 전 세계에서 펼친 정치공작 실적을 자랑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권력도 진화한다. 소수권력이 SNS 빅데이터를 독점하거나 찬탈해 사람을 통제하는 순간, 조지오웰의 디스토피아 '1984'의 문이 열릴 것이다.남 얘기가 아니다. SNS가 진영간의 손가락 전쟁터로 전락하고, 네이버와 다음 등 신흥 미디어는 댓글 조작설에 시달린다. 미투 피해자를 향한 집단 린치에서 뉴미디어의 잔인한 민낯을 본다. 인간은 사라지고 감정 없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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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詩란 무엇인가 지면기사
이 세상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난감한 질문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시란 무엇인가'도 그중 하나다.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답하기가 더 어렵다. 시인들에게 물어도 우물쭈물한다. 김광규 시인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는 마지막 노래", 강은교 시인은 "빈방에 꽂히는 햇빛", 허영자 시인은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정화의 길"이라고 '시처럼' 대답했다. 한국에 있는 수 만명의 시인에게 물어도 그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의 '시'는 따지고 보면 '시란 무엇인가'를 다룬 영화다. 60대 여주인공 미자의 시 쓰기와 성폭행 사건으로 연루된 손자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죄의식의 부재를 고발하지만 그 이면엔 아름다운 것, 잊혀지는 기억의 의미를 더듬으며 '시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이 감독도 "이 영화를 통해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로 다룰만큼 시는 그렇게 오묘하고 영롱한 존재다.책을 읽지 않는 게 사회문제가 된 시대에서 그나마 시집의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 시집이 노출되면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 현상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 4화에 등장한 김용택 시인의 필사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가 노출 즉시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게 그런 경우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집 판매는 거의 매년 10~30%씩 증가했다. 2010년에 비하면 지난해 시집 판매량은 거의 두 배나 늘었다. '시인의 연인'이란 제목으로 유·무명 시인들의 작품과 해설을 매주 경인일보에 연재했던 권성훈 평론가가 그 글을 한데 모아 '현대시 미학산책(경인엠앤비 刊)'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두 번 읽기가 쉽지 않다. 시는 수 백 번 읽을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 책을 읽으면 시가 우리 삶의 테두리 밖으로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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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패권주의에 갇힌 대한민국 지면기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18일 대선 개표 결과 재선을 확정지었다. 76%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이니 무인지경의 독주였다. 6대에 이어 7대 대통령으로 2024년까지 집권이 보장됐다. 2000년부터 3, 4대 대통령으로 8년 연임한 이후 4년을 상왕 총리로 군림한 세월까지 총 24년을 집권하는 셈이다. 중국은 한술 더 떴다.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천970표 만장일치로 시진핑(習近平)을 국가주석 및 중앙군사위원회주석으로 재선출했다. 이날 '국가의 조타수, 인민의 영도자' 시 주석을 위해 인공눈을 뿌렸다. 국가주석 연임제한 폐지 개헌으로 능력껏 장기집권이 가능해진 시 주석인데, 하늘이 할 일을 안하니 사람이 대신했다.중국 시(習)황제, 러시아 차르(황제) 푸틴의 등장이 대한민국에 미칠 영향은 간단치 않다. 패권 추구의 역사를 갖고 있는 두 나라의 집권자가 차례로 독재에 가까운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했으니, 그 여파를 따져보는 건 당연하다. 특이한 인격의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보다는 미국 우선이라는 패권적 행태를 보이고, 60년 가까이 장기집권 중인 일본 자민당이 제국의 영광을 추억하는 현실도 버겁다. 게다가 북한은 '조선 없는 지구는 없다'며 3대 세습을 완료하고 핵을 무기로 패권의 일각을 차지하는 형국이다.주변 4강의 패권주의는 이미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시진핑은 사드의 주인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향해 경제보복의 포승줄을 조였다 풀었다 희롱 중이다. 러시아와 영국의 외교 전면전은 제국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언제든 한반도 문제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는 푸틴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조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는 통상문제 만큼은 변함없이 위압적이고, 미·중·러에 상냥한 일본은 유독 한국에만 독하다. 북한 김정은의 실체는 4, 5월을 지내봐야 결론이 날테고.한반도의 운명이 남북, 미북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간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 4강의 패권주의는 물이 오를대로 올랐다. 남북한과 미국의 합의에 한반도에서의 지정학적 이익을 포기할 시진핑, 푸틴, 자민당이 아니다. 4, 5월 연쇄 정상회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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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저출산세(低出産稅) 지면기사
프랑스 루이 14세의 숭배자였던 영국의 찰스 2세는 1662년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년에 두 번 성 미카엘 대축일과 성모 영보 대축일에 난로당 2실링씩의 '난로세'를 징수했다. 소득과는 상관없이 거둬들였던 세금이라 조세 저항이 심했다. 1696년 영국의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자 '창문세'를 도입했다. 창문이 10개 이하일 경우 0.1파운드, 11개 이상~20개는 0.3파운드, 21개 이상은 0.5파운드를 부과했다. 그러자 창문을 없애는 게 유행이 됐다.러시아 근대화에 앞장선 표도르는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폈던 왕이다. 그는 유럽 문화를 열렬히 흠모했다. 러시아인이면 누구나 길렀던 수염이 미개해 보였던지 귀족에게 수염을 깎으라고 강요했다. 수염을 소중하게 여겼던 러시아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자 기르고 싶은 사람에겐 '수염세'를 내라고 했다. 그러자 반발은 더 커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문세(門稅)'를 거둬들였다. 서울 사대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물품 종류·수량에 따라 세금을 거뒀으나 백성의 불만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1873년에 폐지됐다. 이렇듯 신설되는 목적세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의 저항이 따라다닌다. 정부가 출산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저출산세(低出産稅)'를 검토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파격적인 수준의 자녀 양육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재원 마련을 위해서다. 일부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까지 돌리며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지만 왠지 입맛이 쓰다. '저출산세'는 2005년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거론된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지금 국민들은 높은 조세부담률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목적세를 자꾸 신설해 세금을 거둬들이면 국민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위축이 심화되고 성장률이 더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는 오히려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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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스티븐 호킹 지면기사
외국 유명인사나 위인들이 '한국에 태어났으면'이라는 가정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조롱하는 블랙유머는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가령 만유인력의 창안자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새로운 학설로 교수들의 학설을 부정하다가 눈 밖에 나서 연구실에서 쫓겨나 초등학교 교사가 돼 학부모 촌지나 챙겼을 것이라고 했다. 내신에서 수학과 과학 이외의 과목을 망친 아인슈타인은 중국집 배달원이, 어마어마한 발명들이 특허규제로 사장된 에디슨은 열 받아 특허법을 터득하기 위해 고시생이 됐단다. 하필 북한에서 태어나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틀렸다'고 웅얼대다 들킨 갈릴레오는 죽을 때까지 아오지 탄광에서 석탄을 캤고….스티븐 호킹 박사도 블랙유머의 주인공으로 회자됐는데 한국인 호킹의 말로는 끔찍했다. 어려서부터 천재였던 호킹은 일류대에 들어가 이론 물리학을 하며 빅뱅이론을 열심히 연구했으나, 20대에 루게릭병에 걸려 장애인이 됐다. 그러다 어느 날 몸에 열이 오르고 전신마비가 와서 택시에 실려 병원을 향했으나, 모든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로 받기를 거부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노상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 부재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만큼 장애인 과학자 호킹의 존재는 한국인에게도 강렬했다.지난 14일 작고한 호킹은 새로운 블랙홀 이론을 탐구한 과학자이자 장애를 극복한 영웅으로 동시대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호킹 복사'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했고, 역작 '시간의 역사'는 물리학도들의 희망봉으로 빛난다. 대중들은 신체를 구속하는 절대 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의지에 공감하고 환호했다.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볼 근육만으로 작동하면서도 지적 탐구에 전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그에게서 '존엄한 인간'의 표본을 본 것이다.호킹은 말년에 외계생명체의 습격과 인공지능(AI)의 역습을 경계했다. 위대한 삶을 살았던 천재의 선지(先知)로 여긴다면 인류가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니다. "망가진 컴퓨터(두뇌)에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던 무신론자 호킹이 죽음의 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