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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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피로사회 지면기사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로 시작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저서 '피로사회'는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출간되던 2012년 무려 4만2천권이 판매됐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 했다. 출판 관계자들은 '새털처럼 가벼운 대중인문서가 판치는 출판계에서 벌어진 일대 사건'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피로사회'라는 제목이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누구나 고단한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이 "맞아! 나도 피로해."라며 왠지 제목에 친근감을 가졌을 것이란 얘기다. 가령 쉽지 않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저자 마이클 샌델조차 놀랄 정도로 특이하게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과 비슷한 경우다. 민주화를 이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 교수는 유명인사가 됐다. 한 교수는 현대사회는 '성과사회' '자기착취시대'라고 규정한다. 현대인은 "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과도한 긍정성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일하며,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면서도 실제 본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어제 주당 근로시간을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는 아무리 수당을 더 준다 해도 52시간 초과하는 일을 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야근과 휴일 근무를 당연시했던 직장인 역시 업무 관행과 직장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는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업과 개인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생산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에 나름의 성과를 내야 한다. 한 교수의 지적대로 피로사회의 원인인 '성과주의'가 또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육체적 피로는 줄어들겠지만, 근로자는 '성과'라는 또 다른 적과 싸워야 할 처지에 놓였다. 스트레스는 심화되고 피로감은 더 가중될지도 모른다.철학책 '피로사회'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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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군산의 봄, 인천의 봄 지면기사
지난 주말, 군산의 봄은 맛깔났다.'전국 5대 짬뽕'이라는 중식 집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섰다. 홍합과 바지락, 꼬막이 가득한 짬뽕 그릇을 다 비웠다. 불 향 은은한 국물이 배어든 면은 입안에 착 감겼다. 오전 10시를 지나자 대기 손님이 30명 넘었다. 모 방송국 3대 천왕에 나왔다는 한(韓)식당도 다르지 않다. 달고 시원한 소고기뭇국이 국보급인데, 육회비빔밥에도 자꾸 숟가락이 갔다. 알알이 씹히는 하얀 고두밥이 육회, 나물, 고추장과 어우러져 천상의 맛을 냈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를 자동차로 오갔다. 새만금 지나 연륙교 너머 빼어난 경관이 별천지다.관광객들은 군산의 봄을 맛보고 즐겼으나 시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시내 거리는 제너럴모터스(GM)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도배됐다.군산시는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이 멈추면서 5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말 인구는 27만4천997명으로 전년보다 2천554명 줄었다. 올 들어서도 2월 10일 현재 439명이 또 줄었다. 지역은 5월 말 GM이 폐쇄될 경우 감소 추세가 더 급격화할 것으로 우려한다.GM의 철수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낮은 생산성과 고임금'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GM은 스웨덴과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먹튀'란 오명을 남겼다. 우리 정부에도 '지원 대책이 뭐냐'고 윽박지르듯 하고 있다. 적반하장격이다.인천 부평GM공장에도 먹구름이 짙다. 1만5천여명 직원은 2001년 '부평사태'가 재현될까 걱정이다. 당시 GM은 대우자동차 인수과정에서 1천750여명 부평공장 근로자들을 대량해고했다. 부평공장 협력업체는 1천여개, 이들까지 포함한 전체 고용인력은 3만여 명에 이른다. 인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나 된다.인천시가 26일 범시민 대표 간담회를 열었다. 서로가 "한국지엠 정상화를 위해 지역 역량을 결집하자"고 했을 뿐 타개책은 없었다. 정부도 우왕좌왕 행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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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국版 '스포트라이트' 지면기사
영화의 힘은 시나리오에서 나온다. 좋은 시나리오에 태작(태作)이란 없다. 토마스 메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그런 영화다. 좋은 시나리오 덕분에 2016년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았다. 각본상은 물론이다. 영화는 보스톤글로브지 기자들이 거대 세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정신을 다룬다. 가톨릭 보스톤 교구 신부들 90여명이 조직적으로 아동성추행에 가담했다는 믿기지 않는 실화를 영화 소재로 삼은 것이 우선 놀랍다.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속을 파헤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쉬운게 아니다. 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팀은 두가지에 주목한다. 타락한 성직자와 그들이 저지른 아동학대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것. "사과 몇알 썩었다고 사과상자를 통째로 버릴순 없지 않은가"라며 교회는 저항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성스러운 이름속에 감춰진 사제들의 추악한 얼굴은 드러난다.문화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종교계까지 확산되면서 영화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졌다.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가 아프리카 선교활동에 함께 간 신도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남수단으로 봉사하러 온 여성 신자의 방에 강제로 들어와 "내 몸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 달라"며 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막강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다. 쌍용차 사태, 세월호 비극, 한상균·이석기 양심수 석방 촉구선언대회 등에서 진리의 대변자로 자처해 온 인물이라 충격은 더 크다.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수원교구 교구장이 공개 사과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대외용이고 정작 성당 신자들에겐 "사흘정도 보도거리만 없으면 이슈가 잠잠해 질테니 성당에 나오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한다. 더욱이 한 신부의 만행을 다른 2명의 신부가 알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팀장 월터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뭔가 있다는 걸 알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 끝을 내야 해. 누구도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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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축제는 끝났다 지면기사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샤프가 불렀던 노래 '연극이 끝난 후'다. 곡이 나온 지 40년이 흘렀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사람들이 부를지 그때는 그 누구도 몰랐다. 좋은 노래들은 여러 명의 가수에 의해 수없이 리메이크 되면서 생명력을 이어나간다. 이 곡이 그렇다. '연극'은 그저 상징일 뿐, 그 단어 대신 '사랑'이나 '권력', '인생'을 대치시켜도 공감되는 것이 이 곡의 매력이다. 인생이든 권력이든 끝나면 그저 허무만 남는 법이다. 평창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17일간 평창 강릉 정선 등지를 밝혔던 화려한 조명이 모두 꺼졌다. 선수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과 탄식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는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 우리만 남았다. 큰 행사를 겪은 후 남는 공허감은 신경림의 시 '농무(農舞)'에도 잘 표현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평창올림픽의 막은 내렸지만 걱정은 산더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번 올림픽을 이용해 남북화해를 갈망했던 정부의 집착은 오히려 올림픽의 감동을 반감시켰다. 개막식은 김여정, 폐막식은 김영철에 가려졌다. '평창올림픽은 김여정으로 시작해 컬링의 영미로 정점을 이룬 후, 김영철로 끝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북에서 온 손님들'로 올림픽의 열기가 김 새버렸다는 얘기다. 올림픽 인프라 확충에 투입됐던 14조원의 재정을 누가 부담해야 할지는 차후 문제다. 더 큰 걱정은 더욱 심화된 남남갈등이다.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을 부르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됐지만, 평창 올림픽은 '남북정상회담'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오히려 화합은커녕 국론 분열이 확대되고 있다. 화합의 지구촌 대 축제를 보러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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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문화계 미투(Me too) 운동 지면기사
한국인에게 성(性)폭력 담론은 이중적이다. 피해의식과 가해의식 어디쯤이라서다. 역사적으로 반도 여성의 수난은 늘 성폭력을 수반했다. 병자호란 때는 수많은 조선여인이 청나라에 노리개로 끌려갔다. 곡절 끝에 환국한 여인들은 '환향녀(還鄕女)'로 낙인찍혀 멸시받았다. 일제 때는 식민지의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줄줄이 낯선 이국의 전선에서 희생됐다. 가난한 해방 한국의 소녀들은 미군 기지촌에서 국가의 방조 아래 성적 착취를 감수했다. 패전과 약소의 역사로 인한 여성의 수난사는 정조관념이 유난했던 한국인에게 남녀불문, 총체적 트라우마다.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종식이 힘든 건 일본이 이를 간과해서다.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역사적 부채 때문이라도 근·현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성을 존중해야 당연했다. 하지만 남성이 권력을 장악한 모든 분야에서 여성성을 유린하는 가해는 멈출 줄 몰랐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권력과 신흥자본의 성 의식이 그 수준이었다. 여성의 성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가 그 시절 열렸다. 정인숙 사건 같은 권력의 성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재벌들의 여성 편력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성 주체성에 대한 여성들의 각성이 이루어지고, 성폭력이 인권의 시각으로 다루어지면서 성폭력은 이제 근절해야 할 악으로 규정됐다. 이 과정에서 정계, 법조, 재계 등 지도층 인사가 성폭력 사범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다. 오랜 기간 권력의 상층부를 구성했던 보수 인사가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인권에 반하는 보수적폐로 은유됐다.최근 문화계의 성폭력 스캔들에 대중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문화영역은 산업화의 주역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 진보진영의 보루였다. 문화영역은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고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유효했다. 성폭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진보적 가치가 문화예술 영역에서 숙성되고 확산됐다. 그랬던 문화계의 진보권력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의해 전복되고 있다. 문화계의 '미투(Me too)운동'은 남성의 여성 가해 역사에 저항하는 한국 여성들의 전면전 선포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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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간호사들의 그늘 '태움 문화' 지면기사
간호사들 사이의 괴롭힘을 뜻하는 '태움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며칠 전,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발단이다. 그의 남자 친구는 '태움으로 불리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엄하게 가르치는 방식을 뜻한다. 마치 군대에서 선임병이 후임을 갈구는 것과 같은 유형으로 보면 된다.간호사들 사이에 태움이 싹튼 배경에는 직업적 특성이 작용한다. 생명이 오가는 병원 현장에서 신규 간호사의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명분을 담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간호사 조직의 이러한 문화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태움은 비단 간호사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의사 사회에도 있고, 여자 승무원 사이에도 존재한다.대표 사례는 부산시 소재 대학병원 교수들이다. 한 교수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50여 회에 걸쳐 전공의 11명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배 전공의가 환자 관리를 잘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후배들에게 대리 수술을 시키기도 했다. 그를 믿고 수술대에 오른 환자들에 대한 명백한 사기행위다. 피해자들은 앞날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해 폭행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또 다른 교수도 비슷한 시기, 10차례에 걸쳐 전공의 12명을 상습 폭행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그는 당직실에서 후배 전공의에게 일명 '원산폭격'을 강요하고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피해 전공의들은 고막이 파열되거나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피부가 찢어져 서로 상처를 꿰매준 사실이 드러났다.고도의 정신적 집중이 요구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사이 '태움'은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훈육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따돌림, 집단 괴롭힘은 용납될 수 없다. 가르침을 빙자한 인격 살인이다.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폭력과 얼차려가 없어진 세상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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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영화 '곤지암' 유감 지면기사
경기 광주의 '곤지암읍'과 '곤지암리'를 지칭하는 공통 지명이 '곤지암'이다. 읍 명칭이자 읍사무소 소재지인 것이다.밥장사를 하는 최미자씨가 1980년대 시작한 소머리국밥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을 알렸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가 개통되고, LG그룹에서 곤지암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전국구가 됐다.1980년대까지는 100여 호 남짓한 시골 마을이었다. 산 좋고 물 맑아 성남과 이천 시민들이 몰려와 피서를 즐겼다. 2000년대 들어 개발 바람을 타고 인구가 급증, 면에서 읍으로 승격했다. 성남~이천~충주를 연결하고 양평과 여주~용인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영화 제목 '곤지암'이 논란이다. 하필 공포 체험의 성지로 불리는 지역 내 정신병원을 소재로 했다. 공포 체험단 7명이 병원에서 겪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을 담은 영화다. 영화에서 병원은 환자 42명이 집단 자살하고 병원장이 실종된 이후 섬뜩한 괴담에 휩싸인 으스스한 장소로 묘사된다.죄다 허구다. 그런데 굳이 영화명에 '곤지암'을 갖다 붙인 게 고약하다. 정신병원의 실제 이름은 곤지암 정신병원이 아니다. 소재지도 신대리 161-1로, 곤지암리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다. 곤지암 읍이니 상관없다고 우기는 것도 무리다. 신경정신병원이 세워지고 문을 닫을 때까지 '실촌면' 관내였다. 상·하수도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1996년 폐쇄됐고, 소유자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방치됐을 뿐이다.곤지암 주민들은 억울하고 괘씸하다. 제목 변경을 요구하면서 관람 거부운동에 나섰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대꾸가 없다. 치밀한 상술에 의한 노이즈마케팅이란 비판이 나온다. 곤지(昆池)라는 못에 바위(岩)가 솟아 있다고 해서 곤지암이다. 백과사전에는 임진왜란 당시 패전해 전사한 신립 장군과 곤지암이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의 묘도 곤지암에 있다. 왜군에 패해 전사한 것도 분한데 묘 자리가 있는 마을이 공포영화의 제목이 됐다는 사실을 알면 신립 장군은 뭐라 할까. 답답하고 괴이한 일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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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빙속 女帝의 눈물 지면기사
출발선상에서 이상화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선수생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평창올림픽.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 더욱이 상대는 일본 선수 고다이라 나오. 그만큼 금메달이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정확히 37초33 후. 결승선을 통과하자 빙속의 여제 이상화를 연호하는 관중의 함성으로 경기장은 들썩였다. 금메달에 0.39초 뒤진 기록이었지만, 최소한 관중들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표정관리를 잘하던 이상화지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금메달을 따지 못해 슬픈 것은 아니었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싶었다. '고마웠다'란 말을 가장 듣고 싶다." 빙속의 여제라는 소릴 듣지만 이상화의 선수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쇼트트랙 선수로 출발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인지 쉽게 적응했다. 문제는 부상이었다. 끈질기게 이상화를 괴롭혔다. 무릎부상에 이어 하지정맥류. 이상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안 사정상 동생을 위해 선수생활을 포기한 오빠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달려야 했다. 이상화는 10년간 빙속 여제로 세계를 호령했다. 2006 토리노올림픽 때 5위를 했던 그녀는 2010년 스무살의 나이에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2014 소치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2연속 금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이날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는 눈물을 흘리는 레전드 이상화를 안아주면서 "넌 내가 존경하는 선수"라며 한국어로 "잘했어"라고 말했다. 이 장면에 대해 AP통신은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지만 화합을 보여줬다"고 극찬했고, 일본 언론도 "한일 정상 결전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결말이었다"고 타전했다.이상화는 은퇴의 기로에 서 있는듯 싶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상화에게 "은퇴하지 말라"고 강권할 수 없다. 부상을 안고 뛰는 선수 생활의 고통을 우리 범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퇴 결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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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고은과 광교산 지면기사
"광교에 와서/…/광교의 나뭇가지가 되고 싶습니다/…/그 나뭇가지로 이듬해도/그 이듬해도 서리서리 살고 싶습니다//…/광교에 와서/…/이윽고 서해 낙조의 멍한 바다 그 어디로/다 스러져가는 긴 물이 되고 싶습니다//또한 광교에 와서/…/환한 달밤의 눈물 같은 하룻밤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 고은이 2015년 2월부터 경인일보 1면에 연재한 '고은의 광교산 연작' 10편 중 첫 편, '광교산에 와서'의 일부분이다.염태영 수원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물" 고은은 2013년 8월부터 수원 광교산에 새롭게 거처를 마련했다. 20여년 안성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테지만, 수원을 인문학 도시로 만들겠다는 염 시장의 간곡한 염원에 마음을 열었을 터이다. 시업(詩業) 말년의 결정인 만큼, 광교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순명(順命)이라 여겼음직 하다. 시 '광교산에 와서'는 시인이 광교에 뼈를 묻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고…. 이후 고은 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시비와 광교산 주민의 퇴거 시위 등 민망하고 고약한 사단이 있었지만, 가타부타 반응 없이 광교살이의 뚝심을 보여준 시인이다.그랬던 시인 고은이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거처(문화향수의 집)를 떠날 의사를 밝혔고, 수원시는 18일 이를 수용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고은 재단 측은 "광교산 주민들의 반발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공간 거주를 부담스러워 했다"며 "시인이 더 이상 수원시에 누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광교산 퇴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이유 말고도 최근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속 'En선생'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난처한 사정도 광교산 시대를 정리하려는 결심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싶다.광교산을 떠난 뒤 수원에 남을 것이다 아니다 예측이 분분하지만, 이제는 시인이 진정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노벨문학상의 부담으로부터, 그를 통한 도시 마케팅으로부터, 찬양과 비난으로 그의 문학적 성취에 기대려는 무리로부터 초탈하려는 첫 시도가 광교산 시대의 정리이기를 바란다. 애초에 시인으로 광교에 왔듯이, 광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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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참성단]0대8, 0대8 지면기사
얄궂고 공교롭다 못해 괴이하고도 오싹하다.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지난 10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0대8로 참패한데 이어 12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똑같이 0대8로 무참히 졌다. 0대8에다가 또 0대8이라니! 귀신도 곡하다 말고 낄낄거릴 일 아닌가. 당초부터 단일팀은 언감생심 무리였다. 2030 비난도 컸다. 왜 팀워크가 강조되나. 그게 하루아침에 다져지는가. 일체감과 혼연일체라는 말도 괜히 생겼나. 큰 돈 들여 해외원정 훈련은 왜 또 하나. 팀 멤버 상호간의 신뢰감과 정신력이 다져지고 일체감으로 여물려면 숙성시간은 필수다. 그런데도 급조된 남북 단일팀이라니! 결과는 0대8, 또 0대8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2중국적의 세라 머리(Murray·30) 여 감독에게 묻고 싶다. '머리' 속 상황이 어떠냐고. 좌뇌 우뇌 모두 하얘지지 않았나.0대8과 또 0대8에 문득 떠오르는 축구 명감독이 거스 히딩크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까지 끌어올려 영웅이 됐지만 한국 대표팀 감독 초장엔 부진했다. 그 전년 8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대5로 패했고 그에 앞서 대구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s)의 프랑스 전에서도 0대5로 깨져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지 않았던가. 아무리 명감독이라도 한국을 4강으로 끄집어 올리기 위해선 적어도 1년간의 혹독한 체력 단련과 팀워크가 필수였던 거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그건 맞선보는 날 바로 결혼을 해버린 꼴이다. 문재인 정권의 남북대화, 통일 열망이 조급하고도 환상적이다. 지난 9일부터 2박3일 방남한 북한 고위급 중에서도 김여정, 목과 허리가 고장 났는지 도무지 굽힐 줄을 모르고 빳빳한 그녀에 대한 환대는 지나칠 정도였고 비굴의 극치였다.11일 삼지연악단 서울 공연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세 번이나 앙코르를 고함쳤고 남북 여가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자 장내는 환호와 갈채로 떠나갈 듯했다. '이 나라 살리는' 게 통일이고 '이 겨레 살리는' 게 정녕 통일 맞을까. 그러기엔 남북 이국화(異國化)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