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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포츠와 다이애나의 선택

    폴포츠와 다이애나의 선택 지면기사

    남들에 비해 보잘것 없는유일한 카드밖에 없다면오로지 앞을 향해전진하게 만드는 동력될 것이고성공으로 이끌어 줄핵심적인 키가 될 것이다얼마 전에 부산 강의를 다녀오면서 KTX에서 영화를 두 편 보았습니다. 하행선에서는 한번의 기회(One Chance)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모여있는 듯한 휴대전화 외판원 폴포츠가 영국의 인기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프로에 출연해서 인생역전의 기회를 만드는 과정을 다룬 리얼 영화입니다. 어눌한 말투와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폴포츠는 우연히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해서 우승하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연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출연과 포기를 놓고 갈등하죠. 심사위원들의 냉소적인 표정에 더욱 기가 눌린 폴포츠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릅니다. 감동한 청중과 심사위원의 기립박수를 받죠. 그리고 마침내 기적은 이루어집니다. 영화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폴포츠의 선택은 성공으로 끝을 맺습니다.상행선에서 본 영화는 50억 지구인이 사랑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랑을 그린 다이애나 영화였습니다. 찰스 황태자에게 버림받은 다이애나는 심장외과 의사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실연의 상처로 상심한 다이애나는 차선책으로 부호의 아들을 선택하죠. 그들은 파파라치에 쫓기다가 결국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이애나의 선택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날 KTX 상하행선에서 본 영화는 공교롭게 주인공이 둘 다 영국인이었고, 둘 다 선택의 문제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왜 폴포츠의 선택은 성공으로, 다이애나의 선택은 실패로 끝났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 편의 영화가 주인공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고, 저 또한 영화 한 편으로 두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봅니다. '그 선택이 유일한 선택이었나? 그 선택이 얼마나 절실했는가

  • 춘경 유감… 공사판과 미술관 옆 동물원

    춘경 유감… 공사판과 미술관 옆 동물원 지면기사

    수십년 된 소나무 베어 내고산자락 절개 불도저로 밀고철근 박아 콘크리트 붓고…처참한 광경에 말문만 막혀공사판은 천년이 흘러도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출근하는 길은 도회지를 벗어나면 금방 시골길의 풍경으로 바뀐다. 시오리 남짓 따스한 양광속에 펼쳐지는 창밖의 풍광은 참으로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벚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철쭉 라일락 등등 봄꽃이 흐드러진 산야에는 서서히 신록이 물들어가고 있다. 저 자연 스스로가 그려낸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붓끝을 어느 누가 당해낼 수 있을까? 솟은 봉우리 구비쳐 흐르는 골짜기 이 땅은 어느 한귀퉁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만경들뿐이라고 볼멘소리 하는 이도 있지만, 일망무제의 평원이란 사실 무미건조할 뿐이다. 만일 내내 지평선만 바라보아야 한다면 아마 졸음밖에 다른 흥취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는 어디에 간들 자연이 일궈놓은 산수화를 연출하지 않는 곳이 없다. 소동파는 일엽편주를 타고 적벽의 맑은 바람과 강물에 비친 달빛을 자연이 주신 무진장의 보배라고 즐거워했다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봄 경치를 감상하는 이 흥취도 크게 손색이 없을 듯하다.그런데 20분 남짓 걸리는 그 길에는 4군데의 공사판이 벌려있다. 봄이오자 다시 재개한 공사판에서는 수십년 산림녹화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산자락을 절개해서 불도저로 밀어내고 철근을 박고 그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있다. 산자락은 뭉개진 채 붉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자본가는 이 광경을 보고 흐뭇해할지 모르겠지만, 무슨 말로 이 처참한 광경을 표현해야할지 말문이 막힌다. 무슨 사연인지 두 곳은 짓다만 콘크리트 건물벽에 '유치권행사중'이란 대형현수막까지 내건 싸움판까지 벌려놓았다. 이런 것을 보고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고 해야할까? 흥이 깨져버려 그만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고 싶다.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가 있다. 어느 어리석은 노인이 자신이 죽을 때까지 뿐 아니라, 대대손손 이어가면서 앞산을 파서 삼태기로 져서 옮기겠다고 하자 하늘이 감동해서

  • 인문학과 예술이 부흥할 때 나라가 흥했다

    인문학과 예술이 부흥할 때 나라가 흥했다 지면기사

    한류라는 문화예술이세계를 강타하는 창조·창작의세계가 도래 했는데대학들이 취업률 잣대로예술·인문 전공과 없애자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기원전 500년 정도에서 200년 정도가 아닐까싶다. 이 시기에 그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나왔고 그는 신에게 신탁받고 신전에 모시는 제우스나 디오니소스 따위의 신이 인간을 주관하던 때에 인간생활의 성격과 행위를 분석하는 대로 철학의 초점을 옮겼다. 그는 도덕적 가치가 상실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혼란기에 살면서 "너 자신을 알라"는 충고를 하였고 도덕적 용어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윤리생활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소명을 느꼈다 한다. 또한 젊었을 때에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한 플라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융성했던 아테네의 이 시기에 인류역사상 최고의 철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또한 이 시기에 예술에서는 연극의 거장들이 등장한다. '오이디푸스왕'의 소포클레스, '메데이아'의 에우리피데스 등 엄청난 시인들이 예술의 향연을 벌이고 시민들은 흠뻑 거장들의 예술을 감상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연극은 시에서 주관하고 부자들이 협찬하였으며 예술가들은 안정된 창작을 보장받았고 시민들은 즐기면 되었다 한다. 철학을 즐기고 예술을 사랑하고 나라에서 보호 장려까지 하였던 그때가 그리스의 행복시대였다. 그 후 로마에 점령을 당하고 그들의 문화예술 또한 점령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그들은 대륙을 정복하고 얼마 안 되어 당시 미개한 게르만민족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로마는 두 개로 갈라지고 역사는 미개인들의 손에 넘어가 무려 천년정도를 흐르니 역사에서는 이를 중세 암흑시대라 부른다. 다신교였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글도 모르는 미개인들이 유럽을 장악하여 유일신과 주술이 부조화를 이루며 이성이 사라지고 철학은 교회로 들어가고 예술 또한 교회 속 창작만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연극은 교회

  • 인문의 정신은 시민의식이다

    인문의 정신은 시민의식이다 지면기사

    인문학은 이 시대를 사는사람들의 사회적 욕구와갈등에 대해 직면하고해결해 나갈 수 있는힘을 길러주는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오는 6월 중순에 정부는 인문정신문화진흥을 위한 대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인문정신 대토론회'가 작년 10월에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추진 TF가 2월에 구성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일을 수행하기 위한 인문특위가 만들어졌다. 이 대토론회를 위한 사전 준비로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경기(수원), 강원(춘천), 충청(대전), 영남(부산), 호남(광주)을 중심으로 한 전국 5개 권역별 토론회가 5월 중에 각각 개최될 예정으로 있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 특이점이 보인다. 하나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더해 인문학을 사회적 생산의 매개로 보고자 하는 창조적 관점에서의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시민들이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의식화의 가능성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토론회의 성격도 다양한 지역, 계층, 그리고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치유, 평화, 기억, 나눔, 소통처럼 분명한 주제의식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문도시'나 '인문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대중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대학이 중심이 된 시민강좌 형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아예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학에 대한 체험을 직접 드러낼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을 시도하려는 데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이 대중들에게 시혜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한 인문적 내용을 공유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학의 생활 세계적 의의와 효용가치를 드러내고 시민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인문학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들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의 것이며 그들 일상적 경험의 산물로서 정신문화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범사회적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상당한 수준으로 진화되고 있다. 한동안은 시

  • 임계치를 극복하라

    임계치를 극복하라 지면기사

    새로운 가치·세계를 얻기위해자신과 싸워야 하는 지금삶에 지치고, 목표 향하는데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면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난 지금 무엇을 걸고 달리는가'임계치는 어떠한 물리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의 값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물을 100도까지 끓이면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 어떤 상태의 마지노선, 한계치에 마주했다는 표현을 임계치에 도달했다라고 합니다.얼마 전에 연합뉴스 TV와 다큐멘터리 5부작을 찍으려고 산티아고 800km의 순례길을 배낭구 메고 걸으면서 다양한 임계치를 경험했습니다. 열 개의 발가락에 모두 물집이 터지고, 발목에 염증이 생기고, 허리부상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부상당한 몸을 끌면서 가파른 산길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걷다 보니 수시로 한계에 이릅니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배낭도 팽개치고 등산화도 집어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상황, 임계치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를 극복하고 한발 한발 걸으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 그날 걸어야 하는 목표 거리가 다른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음상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25km를 처음 걸어본 날부터 그 다음날 걷는 목표가 25km정도면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30km를 걸어본 다음날부터 30km는 별 것 아닙니다. 35km를 걷고부터는 역시 35km는 별 것 아닙니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한 길이었지만 하루에 35km를 걸은 다음부터는 그 다음날 걷는 거리가 35km 이내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임계치는 한번만 넘어보면 그 한계가 늘어납니다. 마치 고무줄처럼. 그래서 느낀 것이 '자신의 임계치를 한번만이라도 넘어보면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임계치가 생기는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하버드대 윌리엄 제임스교수는 '인간은 평생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 중에서 불과 5~7%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모든 능력이라고

  • 춘분을 맞아… 빛과 그늘의 조화를

    춘분을 맞아… 빛과 그늘의 조화를 지면기사

    전 사회에 만연된 무자비한약육강식·승자독식 시스템맹수는 배 부르면 사냥 멈춰생태계 균형 유지되지만인간의 탐욕은 한없어자연계보다 더 잔인해질 수도해가 바뀐 것이 엊그제 같건만 우수 경칩도 다 지나고 어느덧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봄의 한가운데 춘분이 다가왔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십여일전 아침에는 기러기떼들이 삼각편대를 지어 북녘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겨우내 이 땅에서 시베리아의 강추위를 피해 한철 잘 쉬었다가 떠나던 참이었을까? 아니면 호젓한 호숫가 들녘도 미세먼지와 AI소동에 더 견디지 못하고 먼 귀향길을 서두른 것이었을까?강호뿐 아니라 인간세상도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최근 모 TV방송사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이 압박감에 못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으로 여론이 시끄러웠다.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연출진들이 고의로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려 했을리야 만무하지마는, 아마도 시청률 경쟁이란 괴물이 멀쩡한 출연자들을 궁지로 내몬 배후일 것이다.또 얼마 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던 단역 배우 한 분이 일용직 노동판과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생을 접었다. "그쪽 방향에서 출세한 사람이 천 명에 하나, 만 명에 하나뿐이 안되잖아요. 그냥 싫은 거예요, 세상이…." 유족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란 99% 대 1%란 말이 아닌가? 텔레비전을 켜면 1% 소위 스타와 인기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들로 도배하고 있다. 이제는 운동선수들도 이 스타시스템에 편승하려 얼굴을 내민다. 피와 땀으로 일군 인간승리의 감동보다는 부와 명성을 얻는 편한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타시스템의 문제는 영광스런 1%의 아래에는 99%의 그늘이 짙게 깔려있고, 스타라는 절대강자가 파이를 독식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TV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드리워져있는 명암이다. 운동선수와 연예인은 모두 초등생의 장래희망 3위안에 드는 꿈이다. 그러나

  • 세일즈맨의 죽음보다 더 아프다

    세일즈맨의 죽음보다 더 아프다 지면기사

    기초생활수급보장제 허점에생활고 못견뎌 잇단 자살하는안타까운 현실사회 기득권층들 국민에 대한책임감과 도덕성으로사회정의 실천 앞장서야필자가 연출했던 아서 밀러의 희곡 '전무송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연극에 있어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힘의 양극화와 논리의 모순 그리고 대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힘든 삶을 보편적 가치로 잘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이다.내용을 들여다보면 194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일을 좋아하고 아들에게 존경받고 싶어 하는 영업사원인 주인공 윌리로만이 나이 들어 업무성과를 못 내고 결국에는 젊은 사장에게 모욕을 당하며 해고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거기에 약간의 치매 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변변한 일없이 놀고 있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와의 심각한 갈등까지 겪어내며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파국으로 치닫던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어 죽음으로 아들에게 보험금을 타도록 하는 것이었다. 부인 린다가 남편의 영정을 부여잡고 중얼 거린다. "여보 오늘 집 대출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네요." 이 비극을 연출하면서 작업 내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이야기나 별 차이가 없기에 그랬다. 가족을 위하여, 먹고살기 위하여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이 이야기 아니 이보다 훨씬 슬픈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0년 어느 가난한 노동자가 자기 아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기 위하여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은 세일즈맨의 죽음보다 더 많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난달 26일에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이라는 너무나 안타깝고 그들에게는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생활고로 목숨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집주인에게 폐를 끼칠 것을 염려하며 미안해했고 그들에게는 엄청난 돈이었을 70만원을 봉투에 넣어 마지막 월세를 감당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찌 설명이 되어야하는 건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잘 모르겠다. 국민행복시대라는 우리 하늘

  • 얼굴을 보자

    얼굴을 보자 지면기사

    얼굴 바라보는 것은말 걸기전 적극적인 배려상처받은 마음 드러나는 것주위에 소외된 이웃그냥 지나치지 말고관심 있게 봐주는게 최선타인의 얼굴을 일분만 봐 줘도 평소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도 남의 얼굴을 시늉만 하거나 물건 보듯 대충 본다. 잘났다 못났다는 식의 이분화, 피부가 좋다 나쁘다는 식의 물질화, 얼굴보기가 그저 단순하고 피상적이며 도구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얼굴을 진정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상대의 힘들고 어려운 점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지난달 경기도의 공무원 직무연수 특강에서 이 얼굴보기 실험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연수 중 어느 정도 말을 튼 옆 동료의 얼굴을 잠시 보는 활동이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지만 이내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말을 하지 않고 따뜻한 느낌만으로 동료를 바라보기로 했다. 마주보는 사람에게 혹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넓고 푸근하게 다가가기로 했다.몇몇 짝들이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배가 고픈 듯하다, 피곤해 보인다, 눈이 참 맑아 보인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착해 보인다는 식의 소감이 나왔다. 이 얼굴보기 탐색 결과가 비록 사소해 보일지라도 수강생들에게는 의미있는 사건인 듯했다. 실제 얼굴보기는 마술과 같다. 아마 제대로 동료의 얼굴을 깊게 자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인간관계는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한 수강생이 복도까지 따라나와 말을 건다. 가족들 하고의 불편한 상황을 진지하게 묻는다.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느낌, 아이도 자기 말을 잘 듣지 않고 아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다.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양심이나 동정심을 발동시키려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볼 줄 아는 태도와 어느 정도의 시간만 내면 된다. 동정심이나 양심은 의도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냉정하게 얼굴만 돌리지 않으면 된다. 경청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긴급한 일은

  •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 지면기사

    건강과 가족, 친구와 직장…그것이 있음에 감사 하지만남과 비교해 부족함 느끼면상실감은 불행으로 이어져인생의 고통 덮쳐도 3개월만참으면 행복은 또 옵니다어느 날 5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완전 대박이죠.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50억 원으로 무엇을 살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현재 하는 일을 언제 그만둘지 리스트를 작성하느라고 잠도 못 자고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어느 날 사랑하는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그 친구와의 오랜 인연과 추억들이 생각나서 비통한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술로 밤을 지새울 것입니다.그런데 복권 당첨의 행복한 기분과 친구 죽음의 불행한 기분은 얼마나 유지될까요?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유효기간은 있습니다.50억 원이면 평생 행복하고, 친구가 죽었으면 평생 불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댄 길버트 교수가 제시합니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라고 합니다. 3개월이 지나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거나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릅니다. 즉 50억 원의 복권이 당첨돼도 3개월이 지나면 50억 원 때문에 더 이상의 행복은 지속되지 않고, 친구의 죽음이 주는 비통한 슬픔도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웃으면서 일상생활을 한다는 주장입니다.일반적인 상식으로는 50억 원이나 갖고 있는 부자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불행하고 우울하게(예전에 그의 성격이 습관적으로 불행하고 우울했다면) 살아간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유형의 자산이 주는 행복의 한계는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엄청난 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재벌도, 돈과 인기가 넘치던 연예인도, 심지어 명예의 최고까지 가보았던 전직 대통령조차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작은 것에도 행복해

  • 인천과 평창은 무엇을 보여줄까?

    인천과 평창은 무엇을 보여줄까? 지면기사

    서해바다 배경 세계로 향하는활기찬 항구도시 인천과강원도의 아름다운 산하IT기술로 표현한 개막식이라면전세계가 '한류 저력' 알게되고한국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어동계올림픽이 이제 종반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 선수단의 성적이 예상보다 못하다고 걱정들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성적도 문제지만, 몇 달 앞으로 닥쳐온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인천과 4년 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는 무엇을 보여줄까가 더 걱정이다.특히 소치의 개막식은 훌륭했고 감동적이었다. 암울했던 러시아의 과거로부터 희망찬 미래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급예술과 하이테크기술로 압축한 종합선물세트를 열어보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는 과장된 민족주의라고 혹평했지만, 올림픽 개최국으로 개막식에 자국의 위신을 선양하고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내용을 담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과장된 민족주의라는 식으로만 비판할 수는 없으며, 어느 나라든 완전한 코스모폴리탄이 되어서 올림픽정신만을 표현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개최국의 특수성을 무시하도록 압박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기준을 강요하는 일종의 제국주의가 되어버릴 것이며,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상실한 개막식은 생동감을 잃어버린 채 자칫 매스게임의 군무로 전락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다만 공연에서 표현한 내용이 얼마나 보편성과 예술성을 획득했느냐로, 그 성패를 가늠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편협한 민족주의냐 아니면 인류문화의 다양성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류보편의 가치를 담고 있느냐 자민족 중심의 특수한 선민의식에 제한되었느냐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소치 개막식은 예술성과 대중성, 보편성과 특수성이 아주 훌륭하게 융합되었다고 본다. 나는 러시아의 문화적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순진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류로서 그들이 보여준 꿈 같은 미래를 행복하게 감상했다. 이 점에서 러시아는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중세로부터 시작해서 제국의 붕괴와 혁명의 시기를 지나 밝고 희망찬 미래의 꿈을 힘차면서도 몽환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