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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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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건물들 지면기사
서민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바닷가의 값비싼 고층 아파트들. 겉으로 보기에는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떠있는 것이 마치 꿈의 궁전같이 보이고 더할 수 없이 멋지고 근사한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언제라도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들이다.예를 하나 들어보자.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서 50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원인이 하나같이 질식사였다. 모두가 화학물질이 타면서 내뿜은 시커먼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질식사한 참사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과연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가장 큰 원인은 건물의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 한밤중에 불이 나자 곤한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일어나 대피하기 위해 현관으로 몰려나가 출입문을 열었다. 순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시커먼 연기가 몰려들어왔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눈을 찌르고 악취를 내뿜는 시커먼 연기가 문 틈을 통해 집 안으로 스멀스멀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대피할 공간이 없으니 도무지 속수무책이다.아이들은 울부짖으면서 매달리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손바닥만한 창문을 열어놓는 것뿐이다. 그제서야 그는 테라스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럴 때 테라스가 있다면 가족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버리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아파트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화재 예방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하게 되어 있는지 우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일본의 아파트들은 저층이건 고층이건 반드시 테라스가 설치되어있고, 테라스를 새시로 가려놓지도 않는다. 거기다 테라스는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가며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세대간 테라스에는 형식적으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언제라도 발로 차면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그러니까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또는 다른 집에서 난 불 때문에 연기가 몰려올 경우 그 집 가족들은 일단 자기 집 테라스로 피신했다가 여의치 않으면 칸막이를 걷어치우고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막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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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건강시대와 청춘노년문학 지면기사
한국인의 평균 연령이 80을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생을 60으로 생각하고 70이 드물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가고 100세 건강시대를 맞이했다.이제 누구나 60 이후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20년 이상 연장된 생에 대해 나름대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고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늦게 다시 시작하는 젊은 노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뒷방 늙은이로 자처하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젊은 노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한 축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가른 것은 5060세대라고 한다. 이제 사회의 중심 동력을 2030세대와 더불어 보다 성숙한 연령의 세대가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물론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세대는 젊고 유능한 신세대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노년세대에 대한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생산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산업 현장에 노년 인구가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속도 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노년인구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분야 중의 하나가 문학일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상당 수준의 전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펜만 잡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초보적인 글쓰기이다.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초보적인 글쓰기가 아니다.본격적인 글쓰기의 중심에 있어서도 세대 이동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2010 경인일보 신춘문예에서는 74세의 여성이 시부문의 당선자가 되었고 2012년에는 71세 할아버지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에 당선했으며 70에 한글을 배우고 73세에 첫 시집을 낸 할머니의 시집 '치자꽃 향기'가 2012년 우수문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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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나라 지면기사
최근 고(故) 조성민씨의 자살로 전국이 쇼크에 빠졌다. 그의 전 아내였던 고 최진실씨와 그녀의 남동생의 죽음에 이어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남겨놓은 채였다.지난 몇 년에 걸쳐 한국의 많은 부자와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도 10대와 20대는 사망이유에 자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고나 병이 아니라 불행과 우울증이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나는 개인적으로 이 테마를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 결과, 이는 가치에 대한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인은 그들의 현실에서의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들을 놓아버림으로써 한 개인의 마음과 어쩌면 온 나라에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질 수 없는 커다란 공허감을 안아 버린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돈이나 명예로도 채울 수 없다. '위기에 빠진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이란 TV 시리즈 중 한 인물이 주인공에게 행복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왜 그와 결혼했나요?" "왜냐면 그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결혼 후 그는 당신에게 원하던 모든 것을 주었나요?" "네, 그는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왜 당신은 여전히 불행한거죠?" "왜냐면 제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틀린 것들이란 걸 깨달았거든요."이 짧은 장면은 '왜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불행하고 가련하게 생을 마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진정 원하는 것을 갖게 된 후, 결국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원하는 것을 못 갖는 것보다 더욱 최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상상해 보라. 당신이 원해오던 것을 모두 갖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행복해 지지 않으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것을 그 어떤 악몽보다도 더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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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왕 노릇 지면기사
조선왕조의 22대 왕 정조대왕은 조선의 스물일곱명의 임금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왕이다. 전기의 세종대왕, 후기의 정조대왕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그는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방대한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다른 임금들도 시문이나 글씨 등 족적을 남겼지만 이렇게 방대한 단독문집을 남긴 이는 정조대왕 뿐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었듯이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만들었다.둘 다 인재양성과 문화정치를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같다. 세종대왕이 형님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는 일이 순탄치 못했음에 견주어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정조대왕은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구명을 위하여 대신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호소했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비명에 갔다. 이 사건은 정조대왕 일생일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이후 그의 생애는 이 사건의 극복과정이 아니었나 싶다.우선 그는 군사(君師)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에 들어갔다. 조선왕조는 왕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세자 때는 당연히 서연을, 왕이 되어서도 정사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조강(아침) 주강(낮) 석강(저녁) 세 번이나 경연을 하였으니 왕들의 하루는 참으로 고된 것이었다고 하겠다.그 결과 18세기에 이르면 숙종 영조 등 임금이면서 스승을 자처하는 군사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17세기 세도(世道)를 담당하였던 산림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림은 17세기 붕당정치의 영수로서 학계와 정계를 아울러 통섭하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 18세기 탕평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들 학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산림의 역할까지 한 군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정조는 할아버지들을 계승하여 군사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이런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여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겪었기에 그의 분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신하들을 능가하는 학자가 되기 위하여 밤새도록 공부에 열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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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통령! 지면기사
우리는 멋지고 근사한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까.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이런 생각이 간절하게 다가오곤 했다.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들은 거의가 우리 가련한 백성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다가 끝내 모멸감을 안겨준 채 떠나가곤 했다. 왜 우리한테는 그런 대통령들만 있었을까? 우리한테 복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이었을까.생각건대 우리는 복도 없었고, 선택도 잘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복은 그렇다치고 선택이 잘못된 데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그 첫째가 선택의 어리석음이다. 민심과 여론은 현명하지 못하고 큰 과오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독일 국민이 나치의 선동에 현혹되어 열화같이 히틀러의 등장을 환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군국 일본은 일본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는 대재앙을 불러왔다.둘째는 선택의 비루함이다. 권력의 횡포와 그로 인한 공포 분위기에 주눅이 들면 백성들은 비루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그 속성을 알고 있는 권력은 백성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분열시키고, 부패시키고, 결국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비루한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이 군부 독재였고, 계속해서 이어진 어리석은 선택으로 군부 세력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셋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체육관에서 의식이라고는 없는 로봇 인간들을 앉혀놓고 대통령을 뽑았으니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이승만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 중에 두 번씩이나 막강한 상대 후보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단독 출마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결국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백성들이 어떻게 선택했든 간에 그 결과는 현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현대사의 불행한 한 페이지로 장식되었다. 그렇다 해도 권력을 움켜쥔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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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채마밭 늙은이 지면기사
치열한 선거전 끝에 국민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최근 한국의 모든 관심은 당선자의 인사에 모아져 있다. 당선하는 것도 지난한 일이지만 그 다음 적정한 인물을 발탁하여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더욱 지난한 일이다.인수위원회나 일부 인선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도 있다. 일각에서는 특정 인사에 대해 사퇴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정부의 실수나 잘못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기도 한다.당선자는 전문가를 등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인사가 그렇게 진행될 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여기서 공자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공자의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일과 채소 기르는 일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답했다. "나는 농사일에는 늙은 농부만 못하고 채소 기르는 일에는 채마밭 늙은 농부만 못하다." 공자는 제례에 대해서도 일일이 다 물어서 법도를 찾아 처리했다.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일이나 채마밭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공자는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고 했다. 공자가 농사일에 간섭하거나 이를 아는 체하고 처리했다면 공자가 아니다. 농사일은 농사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요새 말로 하자면 전문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수많은 전문가의 활동이 밑받침이 되었다. 그 동안 한국 사회 곳곳에 훌륭한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었고 이 분들이 각 분야를 선도해 오늘의 눈부신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없어서 또는 전문가가 부족해서 눈에 보이는 국가적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며 기술대국이다. 이제는 전문가를 등용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등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탕평의 정치이다. 극단의 편가르기를 극복하고 대통합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화합과 탕평의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선조를 망친 것은 사색당쟁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1724년 복잡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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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그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자 지면기사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희망적인 소식보다는 절망적인 비명이 자주 들린다. 그제는 누가 자살하였고, 어제는 또 누가 자살하고, 오늘도 역시 누가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이 슬퍼지고 있다.어찌하여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빈번해지면서 마음을 이렇게 무겁게 해주는지 모를 일이다. 나라가 망해서 비탄에 빠진 애국지사들이 자결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의 침략을 받아 망해가는 나라가 서러워서 애국심으로 죽어가는 지사들도 아닌 마당에, 삶이 팍팍하고, 앞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압제와 탄압에 시달리고, 최악의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래도 정권이라도 바뀌면 일루의 희망이라도 보이지 않겠느냐면서, 참고 참아 왔지만, 정권 교체가 실패로 돌아가고 현 정권이 연장된다는 절망감에서 끝내 목숨을 끊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죽음, 우선 그분들의 자결에 삼가 명복을 빌고 빈다.마찬가지로 시민운동 지도자의 죽음에도 삼가 애도의 뜻을 밝히며 그분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쓰리며 속이 탔으면, 하나밖에 없는 그 귀한 생명을 끊어서까지 자신의 한을 풀고자 했다는 것인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쓰리다.MB정권의 노동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실의에 빠졌던 그 많은 노동자,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 정리해고라는 명분으로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볍게 직장을 잃고 생계 걱정으로 신음하고 고생을 했는데, 정권의 연장으로 희망을 엿볼 기력마저 없어졌으니 그들이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일도 결코 좌시할 일만은 아니다.하나뿐인 생명, 하늘이 주신 목숨인데 어떻게 감히 자살이라는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단 말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에 아무리 동정을 한다 해도, 죽음을 무릅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지, 죽는다고 해서 어떤 생산적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시작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면 영원한 끝이 아닌가.잘못된 노동정책에 대한 원한, 대기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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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는다는 것 지면기사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테마인 죽음과 내가 겪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서울에서 있었던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겪고서야 비로소 한국의 장례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됐다.그동안 장례식에 가본 적이 꽤 있어서 동서양의 장례문화가 당연히 다르다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2주만에 독일에 계신 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보니 예전에 죽음과 장례 의식에 대해 막연하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한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사찰에서의 수도생활(한국생활 초반)이나 10여 년전에 있었던 향교에서의 전통 혼례 경험 등 외국인으로서는 운좋게도 한국 고유한 의례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그런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장례식이란 그저 조문객으로서 부의금을 담은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쉽지 않은 인사말을 하고 오는 일이었다. 아내의 아버지의 죽음은 한국의 삶을 제대로 보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의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가짐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장인어른이 계획에 없었던 심혈관 수술을 받은 뒤 모든 가족의 생활은 바뀌었다.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리 모두는 황급히 병원으로 불려갔다.중환자실 앞에는 환자들의 가족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작은 캠프와도 같았다. 그저 환자의 호전만을 기다리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보호자 가족들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웠다.독일에서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고 면회시간 외에는 중환자실 근처에는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를 중환자실에 두고 있다면 병실이 어디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당연했다. 어느 저녁 우리 모두는 중환자실에 불려 들어갔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서 어떻게 한 사람의 생이 사라져 가는지를 보게 됐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로는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죽은 육신은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옮겨졌고 30분 후에는 우리 모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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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TV토론 자격 기준 논란 지면기사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에게 어지간히 혼난 모양이다. 지난 4일 1차 TV토론회가 끝나자 새누리당은 국민적 지지도가 1%에 불과한 후보가 40% 이상의 지지도를 받는 메이저 후보들이 겨루는 법정 토론회에 출연하여 판을 어지럽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그리고선 대선후보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 등으로 제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른바 이정희 방지법을 발의하였다.지난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 세 명의 메이저 후보 외에 3명의 군소후보가 법정토론회에 진출하여 모두 6명의 후보자가 토론회를 벌였음에도 당시 한나라당은 아무 말이 없다가 3명이 겨룬 이번 토론회를 두고서는 새누리당은 불만이 매우 많다.지난 5년 동안 새누리당은 마이너 후보들의 법정 토론회 진출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것은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후보자간 TV합동토론은 그동안 후보들 간의 충분한 토론을 이끌어내지 못해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행 선거법은 토론 참가자, 진행과정 등에 있어서 공정성과 기계적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토론의 역동성과 흥미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사실 TV토론의 모든 문제는 토론회 참여 후보의 자격 기준에서 비롯된다. 자격기준을 낮추면 군소후보와 정치신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TV토론 자체가 난삽해지고, 경쟁력을 갖춘 메이저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진다.반대로 자격기준을 높이면 다수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고 각종 법과 제도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는 군소후보들이 희생될 뿐만 아니라 이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정신에 위배되고 만다. 이 문제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가치판단의 문제이다.TV토론에 참여하는 후보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토론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가장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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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박자 지면기사
필자는 바흐의 음악을 아주 사랑한다. 그 많은 곡 중에서도 '푸가' 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특히 사랑한다. 푸가란 서양음악의 음악구조 중 하나로 두 개 이상의 성부로 구성됐다. 첫 주제(subject)는 다른 성부에서 다른 음조로 모방되면서 전개된다.3성부 푸가에서는 주제가 세번 모방되고, 4성부 푸가에서는 네번 모방된다. 곡은 대위법에 따라 발전되며 주제는 다양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사라진다. 주제의 반만 돌아올 수도 있고, 주제의 조각들만 계속해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아예 주제가 도치(inversion)되어 다른 요소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푸가를 처음부터 유심히 들어보면 이 주제들이 반복되면서 일종의 사이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이클 안에서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형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엇갈린 박자들을 만들어낸다.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일들. 그러나 우리에게 인상 깊게 남는 기억들은 삶에서의 엇갈린 박자들이 만들어준 선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행 중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 골목을 돌자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해변에서 파도를 피하려 뒷걸음질치다 누구와 부딪쳐 첫 눈에 반했을 때. 새벽에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교회에서 감명 깊은 종소리가 침묵을 깨며 울려 퍼질 때. 우는 아기를 안았는데 조용해졌을 때.이런 순간들은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 뚜렷하게 들리게 해주며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도시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침묵과 어둠의 기억마저 잊어버린 우리는 이 순간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기대와 욕망. 어쩌면 이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욕망을 품은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기대를 품게 되고, 높은 기대는 인간이 계획을 세우게 만들며, 계획은 인간을 희열 또는 절망의 양쪽 길 중 하나로 인도한다.여기서 희열을 얻게 됐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만약 절망에 빠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좌절이나 분노 속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