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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 지면기사

    '불신 시대', '불신 사회', 참으로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바로 오늘의 사회다. 그런 가운데서도 더더욱 불신의 수렁에 빠진 분야는 바로 '정치 불신'이다.지위가 높고 책임이 무거운 지도자일수록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고, 하는 짓마다 국민을 속여 먹는 작전에 능숙해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정치 혐오증에 걸려 무조건 정치인은 싫고, 정치는 타기의 대상에 오른 지 오래되었다.정치 없이는 나라도 안 되고 세상도 돌아가지 않음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처럼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가 어디서 왔단 말인가.지겹도록 거짓말만 하던 자유당 독재의 12년, 억지로 헌법을 고쳐 정권 연장을 지속했던 위대한 거짓, 그것도 부족해 역사에 없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 국민의 분노로 4·19혁명에 의해 이승만 독재는 무너졌었다.정치 불신이 이제나 가실까 여길 때, 5·16쿠데타로 정치 불신과 사회 불신은 가속화의 길을 걷고 말았다. 군에 복귀한다는 약속을 뒤집고 정권을 잡은 쿠데타 주역의 식언(食言)이 계속되면서 정치는 바로 나락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국민을 속이는 정권 연장이 계속되고, 신조어인 '번의(飜意)'라는 추악한 용어가 신문을 도배하면서 정치에 믿음을 갖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3선 개헌의 그 엄청난 정치 속임수에 영구집권의 '유신'까지 선포되었는데 국민의 누가 정치에 신뢰를 할 수 있었겠는가.이런 역사가 뿌리를 내리고, 집권과 정권 연장을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아낄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이 통하면서 정치 불신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2012년 중반부터 오늘까지 몇 개월,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런 정치 풍토에서 탄생한 부산물이며, 메시아를 갈망하던 민중의 염원이 모인 바람이자 희망이었다. 진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짓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여길 때, 정당도 싫고 구정치인도 싫고, 낡은 것이나 거짓은 더욱 싫다는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준 사람이 바로 안철수라는 우람한 정치 신인이었다.

  • 언론의 용비어천가 유감

    언론의 용비어천가 유감 지면기사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언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치켜세우기와 노골적 지지, 반대로 상대 후보에 대한 깎아내리기와 흠집내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흔히 권력에 대한 언론의 역할을 개에 비유하곤 한다. 여기에는 모두 4마리 개의 유형이 있다. 먼저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는 파수견(watch dog), 권력 감시를 넘어 사사건건 권력을 물어뜯어 권력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공격견(attack dog), 이들 개와는 반대로 권력의 총애를 받기 위해 꼬리치는 애완견(lap dog), 권력에 꼬리치지는 않으나 그저 순종하고 잘 따르는 안내견(guide dog) 등이 있다.공격견은 자칫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으며, 안내견과 애완견은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주구로 전락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권력을 건전하게 비판, 감시하는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 대체로 지난 1960년대까지 우리 언론은 나름대로 파수견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1970년대 유신정권을 거쳐 5공 정권시대에는 애완견 역할로 전락하였으며, 6공화국과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에는 안내견 역할이 강했던 게 우리 언론이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보수신문들은 파수견을 넘어 공격견으로 돌변해 정부를 끊임없이 물어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격견부터 애완견까지 네 가지 유형의 모든 개들이 혼재하여 존재하고 있다.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우리 신문과 방송들은 새로운 대통령인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힘차게 합창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불굴의 용기와 끈기로 이겨낸 일로 시작하여,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투옥됐을 정도로 투철한 민주의식과 애국심을 갖고 있으며,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장황하게 보도하였다. 또한 BBK사건,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그리고 자녀위장취업 등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과거 10년 동

  • 선(line)과 원(circle)

    선(line)과 원(circle) 지면기사

    '매크로코즘(Macrocosm)'과 '마이크로코즘(Microcosm)'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원으로 '큰' 또는 '대규모의'를 뜻하는 'macros', '아주 작은' 또는 '극소의'를 뜻하는 'micros'와 '질서' 또는 '세계'를 뜻하는 'kosmos'의 합성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에 근원을 둔 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단계, 즉 가장 큰 단위인 우주부터 원자보다 작은 단위의 것들까지에는 동일한 양식이 반복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다르게 표현해 공간과 시간안에 존재하는 것들에서 공통된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큰 것에서 작은 것들을 터득할 수 있으며 또한 작은 것에서 큰 것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기술을 익히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사회의 규칙을 만드는 자, 집행하는 자,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세력 갈등을 거듭하며 누가 더 우월한 지위를 점령하는가를 기준으로 성공을 가늠해왔다. 하나 이는 사회적 성공에 불과할 뿐 개인적 성공을 가늠하는 표준이 되지는 못한다. 개인적 성공은 사회적 성공과 평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행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그 모양이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성공을 '선(line)'으로 본다면 개인적 성공은 '원(circle)'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져그렇다면 개인적 성공은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개인적인 성공은 물질적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삶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깨우치고 행동으로 옮긴 후 시간이 경과되면 그 깨우침에 갈등이나 의문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그 깨우침은 몸에 배게 된다. 깨우침의 직전을 시발점으로, 그리고 시간을 추진제로 가정한 전제하에 이때 이 개인은 '원'을 한 바퀴 돌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원'을 한번 완주했다고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깨우침이 몸에 배거나 아니거나 일단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시 얻는 깨우침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고는 보이나 실제로 각도를

  • 필주(筆誅) 처럼 무서운 벌은 없다

    필주(筆誅) 처럼 무서운 벌은 없다 지면기사

    지난달 10월 17일은 유신독재가 선포된 40주년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은 10·26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날이자 유신독재가 끝나던 3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40년과 33년이라는 짧지않은 세월, 안타까움과 처량한 탄식만 나올 뿐, 그 긴 세월에 우리의 삶이 보람된 생애였다는 아무런 징표도 없으니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후퇴만 되고 있는데….간추린 일기4·19를 고등학교때 겪었고, 대학에 들어와 6·3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날을 세웠으며, 그런 와중에 '신망잃은 박정희 정권 하야를 권고한다'라는 최초의 하야권고 시위로 확대되면서 첫 번째로 학생의 몸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오래지않아 풀려났으나, 65년에는 한일협정비준 반대로 싸우다가 마침내 월남파병 반대 시위에 앞장서다가 두 번째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몸이 풀려나오자 군에 입대하라는 영장이 기다리기에 강원도 전방에서 3년 세월을 국토 방위로 젊음을 보내고 말았다. 68년에야 제대하여 그해 가을에야 재입학으로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69년에는 3선개헌 반대의 시국에 또 기웃거리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 교수가 되려고 몸을 굽히고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있을 때, 마침내 72년 영구독재가 완전무결하게 자리잡는 유신이 선포되고 말았다.정말로 암담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국회가 해산되고 모든 법과 헌법까지 확실하게 중단되어 한 사람의 말이 법이고 헌법인 절대 권력으로 장악되는 엄연한 역사의 현실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지켜보던 그때, 참으로 분개하고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이런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된다는 것인가.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따위 통곡이 어떤 힘을 발휘했으랴.최초의 유신반대 투쟁계엄령으로 군이 온갖 권력을 장악한 그때, 맨주먹인 국민들이 무슨 용맹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나의 모교 전남대학교에서는 마침내 그해 12월초 유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함성'이라는 지하신문이 학교와 시내의 곳곳에 뿌려지는 쾌거가 일어났

  • 한국 모터스포츠의 도래

    한국 모터스포츠의 도래 지면기사

    나처럼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은 자동차 생산국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모터 스포츠와 거리를 두며 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국의 자동차 제조산업을 인정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갖게 된지는 이미 오래다. 카레이싱의 본고장이 유럽이고 F1 세계자동차경주대회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르망이나 뉘어브르크 서킷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이같은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생산이나 소비 과정에 있어서 '빨리빨리' 태도가 더해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모터 스포츠에서는 그다지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자동차 생산국들 중에서 한국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리고 택시와 버스 기사들의 그 엄청난 운전솜씨를 보면 한국은 확실히 모터 스포츠에 충분한 재능이 있고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물론 한 스포츠의 인기를 올리고 싶다면 정체성이나 연대감이 느껴지는 팀이나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박세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갑자기 온 나라 전체가 골프에 열광하기 쉽진 않았을 것 같다. 큰 이벤트는 한국인의 '파이팅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어 왔다. 나는 사실 한국팀이나 한국인 선수가 없지만 F1 국제자동차경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불붙듯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방문객의 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낮고 엄청난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의 관심도 크지 않다. 2010년에 있었던 1번째 경주를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심지어 2011년에 한국에서 F1경주가 계속될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영암에 찾아오는 레이싱팀에게 나는 자신있게 "내년에 다시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다음해 경기가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슬슬 앞으로 다가올 매년 F1경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고조되기를 희망하며 어쩌면 대선이 지난 후에는 한국의 행정가를 비롯한

  • 선거여론조사 공화국

    선거여론조사 공화국 지면기사

    필자는 지난 며칠 동안 3통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2번은 집전화로, 한번은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는데, 모두가 조사원의 생목소리가 아닌 사전에 녹음된 ARS조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 지가 궁금하여 녹음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해당되는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황급히 받아보면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박근혜 후보는 1번, 문재인 후보는 2번, 안철수 후보는 3번, 기타 후보는 4번을 눌러주십시오"라는 기계음을 듣고 짜증이 안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향력 크지만 신뢰도는 떨어져 아이러니전문성 낮은 '싸구려 조사기관' 난무감독기구 만들어 공정·정확성 높여야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우리 국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거여론조사가 우리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선거공해로 변질되고 말았다. 가수 싸이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거여론조사공화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거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넘쳐나는 여론조사 건수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마저 뽑고 있다. 심지어 정당간의 단일화 후보도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런 사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다간 국민의 직접 투표 대신에 아예 여론조사만 가지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자는 얘기가 나올지 모를 지경이다. 여론조사가 이처럼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모두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하겠다.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자 정치 도박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

  • 메세나(Maecenas)

    메세나(Maecenas) 지면기사

    누구나 다 '메세나'가 될 수 있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로마제국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설립될 무렵 제국의 첫 황제의 측근자인 마에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프랑스 발음 메세나)의 이름에서 만들어졌다. 메세나는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소유한 귀족층의 가문 후손으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같은 귀족층 출신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황제의 은총을 한 몸에 즐겼다. 황제와 나란히 출전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제 로마제국의 행정과 외교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메세나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재능이 아닌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그의 이름이다. 메세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만 그 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을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의 후원 동기는 명예나 이윤 같은 비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문학에 대한 얄팍한 흥미나 허영심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니었다. 천재적인 문학가들과 지적으로 평등한 대화가 가능했던 그는 주택의 호화스러운 정원에서 젊은 예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주 즐겼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예술가들의 관심사 밖에 있던 주제인 정사를 수시로 논하면서 예술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메세나를 시인들은 존경했고 그의 지혜는 고스란히 시인들의 책에 담겼다.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호라티우스의 '서정시집' 과 '서간시집' 같은 문학의 보석에서 후원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예는 아마도 메세나밖에 없을 것이다. 메세나는 젊은 예술인들의 후원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메세나는 자연스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형태에 많은 변화가 없이 지속되어왔다. 플로렌스의 르네상스를 이룬 메디치 가문, 베토벤과 리스트 같은 음악적 천재들을 지원했던 합스부르그 가문 역시 막강한 부와 세력, 그리고 가문 멤버들에게 강조된 광범위한 문학과 예술의 교육을 배경으로 메세나활동을 펼친 예다. 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초대기업들도 활발하게 메

  • 함세웅 신부의 은퇴

    함세웅 신부의 은퇴 지면기사

    얼마 전 우리시대의 사제 함세웅 신부님이 만70세로 성당의 주임신부직에서 은퇴하였다. 은퇴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촉박해서 들었던 탓으로 꼭 참석해야 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여 은퇴기념 만찬을 하자는 통보를 받고도 오래 전에 약속된 긴급한 일 때문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애석함을 느껴야 했다. 이래서 미안하고 저래서 죄송한 신부님의 은퇴 행사, 어떻게 해야 그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그래서 책꽂이에 넣어두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함신부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지난 해 여름 10년을 넘게 써오던 '선포와 봉사'라는 사목지의 서문으로 쓴 글을 묶어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책이다. 함신부는 1999년 연말 여러 사제들과 함께 '기쁨과 희망사목연구원'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시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찰하고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단체의 기관지가 바로 '선포와 봉사'였고, 그 책의 서문을 도맡아 쓰신 분이 함신부였다.그런 함신부께서 주임신부직을 은퇴하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에서 태어난 함신부는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로마에 유학을 가 신학석사와 신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 이래 성당의 주임신부로, 가톨릭대학의 교수로, 서울대교구의 홍보국장으로 사제직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바로 1974년이었다. 유신독재가 백성들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에 의해 범죄자로 조작해 투옥시키고 극형에 처하는 등 악랄한 짓을 감행하였다. 이 무렵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가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는 등 극악한 참상에 사제의 신분으로 괴로워하던 함신부는 마침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저항단체를 결성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말았다.1976년 한국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함신부는 그해 3·1구국선언에 앞장서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뒤에도 또 구속되어 함신부는 신자나 비신자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

  • 자연에 대한 특이한 취향

    자연에 대한 특이한 취향 지면기사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곳곳에 숨이 멎을만한 놀라운 곳이 있다. 우아한 긴 해안가며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겹겹이 쌓인 수많은 산들은 사계절 내내 끝없이 변화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아름다움이 매년 사라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한국의 인구 증가는 정체상태지만 도시나 도로 개발은 여전히 한창이다. 1994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온 나로서는 예전과 비교해서 가는 곳마다 산천의 모습이 현격히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엄청나게 훼손됐고, 가보기 쉽지 않았던 신비롭고 평화롭기까지 했던 외진 곳에는 이제 6차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상업적으로 개발됐다.개발이라는 괴물에 삼켜진 '보물같은 한국'자연스러운 하천·산세에 맞는 국도 잃어버려불편 감수한 자연으로의 발걸음 '희망이길…'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발은 필요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새 길이 들어선 것을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산과 들을 관통하며 보기 싫은 흉터처럼 남은 환경이 무시된 채 건설된 새 도로는 본래 한국의 평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과연 이 많은 새 도로들이 다 필요하기나 한 걸까? 수 년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차가 없었다. 당시엔 오직 내가 갖고 있던 오토바이크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다니곤 했다. 그래도 보통의 한국인들보다는 한국의 곳곳을 많이 둘러 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100편이 넘는 사진과 글을 담은 여행기사를 써오며 바이크 투어를 오래 한 덕분에 작은 국도와 비포장도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내가 좋아했던 국도에는 높은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그 길을 가로지르며 곳곳에 어마어마한 기둥이 세워진 것을 봤다. 자주 다녀본 적이 있는 그 길만 하더라도 한 번도 교통체증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하천과 그 지역의 산세에 맞게 건설된 국도를 왜 마다하는 것일까?가끔 나는 이 나라에서는 무조건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은 차로 쉽게 갈 수 있어야하고 그곳

  •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 싸움 그만둬라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 싸움 그만둬라 지면기사

    지난해 추석을 시발점으로 18대 대선 마라톤 레이스가 본격화된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레이스에서 떨어져 나갔고, 이제 선두권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선수만이 남아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그런데 대선 마라톤 레이스를 중계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두고서 선수들은 물론이고 관중들의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선수를 칭찬하고 지지하는 반면에 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는 흠집 내기하는 불공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두패로 나뉘어진 '정당 기관지'로 전락일부신문 특정후보 편들기·흠집내기 도넘어사실에 입각한 철저한 후보검증 역할해야60여년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선거사에서 지금까지 선거의 불공정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70년대까지는 관권과 금권 개입이 불공정 시비의 핵심이었다면 1980년대 이후로는 언론의 불공정성이 시비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엄정중립을 견지하고, 공정보도를 통해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직접 선수로 뛰는 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선거철만 되면 우리 언론은 말로는 공정보도, 객관보도를 외치면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노골적으로 편들곤 하는데, 특히 신문이 심한 편이다. 조중동의 보수신문과 경향과 한겨레의 진보신문들은 똑같은 정치인과 정치 현안을 두고서 보도하는 시각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아예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한국 언론사적으로 길이 남을 최악의 편파보도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지난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있는 날 아침에 배달된 우리나라 최대 신문의 사설 내용이다. 투표일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전격적으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하는 돌발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두고서 이 신문은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라고 하였다. 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