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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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청약 유감 지면기사
청약통장이 없어 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통장 개설을 권유받았던 지인이 있다. 어느 날 창구직원의 끈질긴 구애에 "이 상품이 금리가 제일 세다"는 말을 믿고 월 170만원을 붓기로 했다고 한다. "청약통장은 그런 거 아니야. 더 적게 넣고 오래 붓는 게 좋은거야"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그 지인은 "사회에 나올 대학생들한테 노동법만 가르쳐야 할 게 아니라 청약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바야흐로 '청약 대전쟁'이다. 기록적인 집값 상승으로 기존 주택을 사기가 어려우니 청약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모델하우스와 평면도를 보지 않고도 구매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3기 신도시 사전청약) 하면, 청약제도 변경 사실을 알리는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가 달린다. 이런 제도 변경으로 어떤 세대·어느 계층의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됐다는 둥, 정부는 제정신이냐는 둥….신혼부부의 몫을 늘리면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긴 중장년층이 반대하고, 신혼부부 중에 아이가 없는 사람의 몫을 늘리면 아이가 있는 사람이 반대한다. 신혼부부의 몫을 늘리면 혼인기간이 긴 무주택자가 반대하고 소득 기준을 높이면 저소득자가, 소득 기준을 낮게 잡으면 고소득자가 반대한다.청약제도는 쉬운 듯 어렵다. 실제로 해보니 더 체감이 된다. 청약통장 불입 횟수·가입 기간은 기본값이 되고 자녀 수, 소득, 자산은 변경값이다. 기본값과 변경값의 합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어떤 청약에서든 동일하게 계산되는 '상수'다. 청약의 당락을 결정하는 건 '변수'.분양하는 물량은 적고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늘 경쟁이 발생한다. 동점자는 추첨을 피할 수 없다. 흡사 복권 당첨과 같은 난수 추첨이 이뤄지고 바로 여기서 청약 성공 여부가 갈린다. 청약은 기본 방정식에 양자역학과 같은 불확정성이 더해진 신기한 공식이다. 이 문제의 정답을 명쾌하게 낼 수 있는 수학자(국민)는 없다. 방정식 풀이는 결국 운에 달렸다. 주거권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신지영 경제부 기자 sjy@kyeongin.com신지영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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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건 아닌지 지면기사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무릇 기자의 일이란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알아가는 과정과도 같다'는 비유를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시각장애인은 기자고, 코끼리는 실체적 진실이다.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코끼리의 코만 만진 사람은 '길고 물컹한 동물'이라고 알 것이고, 다리만 만진 사람은 코끼리를 굵은 기둥과도 같다고 생각할 테다. 결국 코와 귀, 다리, 꼬리 등 코끼리의 모든 부분을 확인해야 전체적인 코끼리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기자도 거대한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야 진실에 그나마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언론 개혁이 화두인 요즘, 코끼리를 떠올린다. 우리 주변엔 여러가지 기사가 있다. 기자가 봐도 정말 잘 쓴 기사가 있는 반면, 부실하거나 마치 일부가 전부인 것처럼 부풀린 기사도 있다. 의도적 짜깁기 기사도 있고, 몇 년에 걸친 탐사 끝에 결실을 맺은 기사도 있다. 수많은 언론사에 있는 기자 수 만큼이나 코끼리의 형상은 제각각이다.더군다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단순히 코끼리를 그리는 차원을 넘어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또 가변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속출한다.최근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는 코끼리의 모든 면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코끼리의 앞과 뒤, 옆, 위, 아래를 모두 살펴볼 의지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매우 과격한 방식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진실을 알아가는 일은 단순 처벌조항 몇 개 만든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다양한 코끼리 그림이 나온 이유와 과정을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비로소 개혁을 논의할 수 있을 테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기자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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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온갖 패닉 지면기사
온갖 '패닉'들이 우리를 패닉(panic)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panic'이란 말은 명사로서 '(갑작스러운)극심한 공포, 공황'이란 뜻과 동사로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다'라는 무서운 의미를 가졌다. 굳이 손을 뻗어 찾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다양한 패닉들이 다가와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든다.아직 결혼 전이거나 대학 졸업조차 안 했는데 무섭게 치솟는 집값에 "평생 집 한 채 못 사면 어쩌지" 하고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며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는 '패닉 바잉(buying)'. 은행 저축이나 할 줄 알았지 투자라곤 경험도 없으면서 주변에서 수백만원, 수천만원 단숨에 벌었단 말에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란 '극심한 공포'로 뛰어든 주식시장에서 주가폭락을 경험한 이후의 '패닉 셀링(selling)'.나도 모르게 패닉에 빠진 국민들이 집 사고 투자하느라 빚을 너무 많이 내고 집값도 통제 불능 수준으로 올랐다며 급기야 대출까지 옥죄는 정부 때문에 요즘엔 '패닉 대출'이란 말도 생겨났다.이런 와중에 실낱같은 희망으로 보고 믿어야 할지, 허울뿐인 껍데기만 내세운 속임수인지 헛갈리게 하는 '기본주택', '원가주택' 같은 말들은 우리를 또 다른 패닉으로 몰아넣는다.우리는 잘 모른다. 기본주택이나 원가주택이 희망으로 다가올지 또 다른 패닉이 될지. 그런 말을 만든 당사자들도 어떻게 그걸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는다.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겠지 갈망해 온 '비포 코로나'란 꿈도 어느새 불어닥친 델타 변이란 변수와 함께 '위드 코로나'라는 작은 소망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백신 접종에 혼신을 쏟고 있지만 아직 어느 분야에서도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그래도 희망을 버리진 말자.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무더운 여름을 참아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가을을 맞은 뒤 추운 겨울까지 견디고 나면, 언젠가 따뜻한 봄이 오겠지. /김준석 경제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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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형사고소 3판 2승 기자의 '언론중재법' 단상 지면기사
또 형사 고소를 당했다. 벌써 세 번째다. 이번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다. 고소인은 평택시의 한 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장이다. 지난해 11월 취재를 하다 보도하지 않기로 하고 노트북을 닫았는데, 두 달 전쯤 고소인이 전화를 걸어오더니 '내 번호를 어떻게, 누가 알려줬느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기분 나쁜 욕설을 퍼붓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수에게도 취재원 또는 제보자가 누군지 숨겨야 하면 숨기는 게 우리 규칙이다.첫 피고소는 2018년 7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였다. 화성시 병점동에 있는 인도어 골프연습장에서 프로골퍼를 내세운 1대1 레슨광고를 해놓고 고객에게 홍보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환불까지 지연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다. 난생처음 경찰 조사를 받았다.두 번째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다. 아동학대처벌법 35조를 보면 비밀엄수 등의 의무라는 조항이 있다. 아동학대행위자가 특정되도록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피겨 꿈나무를 짓밟은 코치가 강용석 변호사를 통해 작성한 고소장을 받아들고 수원지검 조사과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2번 조사를 받았다. 아동학대 가해 코치는 1심에서 징역 1년 법정구속, 2심에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앞선 두 차례의 피고소 사건 모두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문제가 되지 않게 사실을 공정하게 보도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하는 '언론보도와 법적 분쟁' 경력기자 연수를 받았다. 더 답답해졌다. 널리 알려선 안 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만 배웠다.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이 난리다. 별칭은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란다. 지역 언론은 권력형 비리 말고도 시정잡배, 주폭, 서민 주머니 털어가는 사기 잡범 기사도 쓴다. 지역민을 괴롭게 하는 행위 자체가 공적인 사안 아닌가. 우리 삶과 관계된 논쟁과 비판을 가짜·허위로 규정하고 억누르는 규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닫힌 사회'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손성배 기획콘텐츠팀 기자 son@kyeongin.com손성배 기획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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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인하대 학생들의 과잠 시위 퍼포먼스 지면기사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총동창회, 교수회, 직원노동조합은 지난 23일 인하대 본관 2층 대강당에서 교육부의 '2021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500여개 좌석 규모의 대강당을 뒤덮은 학과 점퍼(과잠)였다. 평상시라면 학생들이 앉았을 좌석의 빈자리에 과잠이 채워졌다.대강당에 걸린 과잠은 인하대 재학생, 졸업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것으로 총학생회 등과 뜻을 함께한다는 의미가 있다. 인하대 총학생회는 최근 학교 대운동장에서 과잠 200여개를 동그랗게 펼쳐 놓고,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에 대한 이의 신청 수용을 교육부에 촉구하는 '과잠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이러한 시위와 퍼포먼스를 지켜보면서 인하대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잠을 선택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던 중 잠시 잊고 있었던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신입생 때 대학교와 학과의 영문 이니셜, 그리고 학번이 적힌 과잠은 학생증과 함께 대학에서의 소속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줬던 것 같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3월이 지나면, 과잠을 입고 교정을 다니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과잠은 학교와 자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중 하나인 셈이다.현재 인하대에 모인 900여개의 과잠은 학생 각각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자신의 과잠을 보내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를 규탄하는 학생 900여명의 목소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인하대 학생들의 과잠 시위와 퍼포먼스는 과잠이 가지는 의미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고려했을 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목소리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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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피로감 쌓이는 소상공인, 더 세심한 정책을 지면기사
소상공인을 위해 정부가 야심차게 마련한 5차 재난지원금 희망회복자금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희망회복자금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마련됐다. 매출액과 집합금지, 영업제한, 경영위기업종 등을 구분해 최소 40만원에서 최대 2천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4조2천억원에 달하는 지원이지만 소상공인들은 형평성 문제를 언급하면서 만족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노래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재난지원금으로 400만원을 받았지만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하소연했다. 400만원은 집합금지 업종 중에서 가장 낮은 기준이다. 정부가 집합금지 업종은 최대 2천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연매출이 4억원이 넘어야 가능하다. 이 업주는 오후 10시까지 영업제한 조치나 집합금지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 매출이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지원금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5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한 유흥주점 B업주도 기본 매출액을 제시할 수 없어 400만원밖에는 받지 못했다. B업주는 임차료도 내기 힘들 정도인데 이번에 받은 재난지원금은 지난 3월에 지원받은 4차 재난지원금보다 100만원이나 줄었다.일부 소상공인들은 지원금이 당초 예상보다 줄거나 지원 자격에서 제외된 명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상담 문의전화가 폭주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하고 이의신청 기간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23일 수도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되고 영업시간도 기존 오후 10시에서 오후 9시로 줄어들었다. 거리두기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피로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면 소상공인들을 위한 보다 세심한 정책도 필요하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어낼 수 있도록 관계 부처들이 좀 더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원근 사회부 기자 lwg33@kyeongin.com이원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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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北 실세 김여정 부부장이 페북 유저? 지면기사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출신인 A씨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는데 북한 실세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이름을 딴 계정이 공감(좋아요) 표시를 남긴 것이다. A씨가 올린 글의 제목은 '김여정이 "남조선 바쳐라" 나오면 어쩌나'였다. 범여권 의원 74명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조건부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내용과 함께 그간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 이후 정부가 대처한 상황 등을 담았다. "김여정이 어느 날 갑자기 문재인 정부는 남조선 바치라우! 나온다면? 여당 국회의원 8할 이상 '그리하자'로 의견 모을 것이다." A씨가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누가 봐도 현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를 비판하는 내용이다.한국어에 서툰 사람이 김 부부장을 사칭해 만든 '가짜 계정'이 아닌, 만약 진짜 김여정이 '좋아요'를 눌렀다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일이다. 마크 주커버그도 관심을 가질 만한 사건이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페이스북 계정에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이 워낙 팔로우를 많이 해 김 부부장도 그중 한 명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진짜 김여정일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문제의 계정에는 김 부부장의 사진을 프로필로 해서 직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력은 김일성종합대학, 생일은 1987년 9월26일로 쓰여있다. 팔로워는 4천여명을 거느렸다. 김 부부장 명의의 계정에 아무렇지 않게 팔로워가 쌓이고, 어떠한 거부감 없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퍼지는 세태만으로 보면 이미 우리 주적은 북한이 아니다.최근 국가정보원은 북으로부터 친북·반미·반보수 활동에 나서라는 지령을 받은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조직원들을 간첩 혐의로 수사 중이다. 실제 김 부부장이 페북 계정을 운영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작활동 한쪽에 북의 위협에 대해 심각해 하지 않는 분위기가 스며든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상훈 지역사회부(부천)기자 sh2018@kyeongin.com이상훈 지역사회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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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귀찮은 다이어트 지면기사
과자를 집에 사놓지 않는다. 과자가 먹고 싶으면 직접 신발을 신고 나가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서 사 먹어라. 야식이 먹고 싶으면 '홈트(홈 트레이닝)' 30분은 하고 먹어라. 술 마시고 싶으면 그날 한 끼는 굶어라.다이어트 고수들이 권하는 방식 중 하나다. 먹는 양을 줄이고 먹고 싶은 욕구를 감소시키려 절차를 복잡하게 하는 원리다. 이 같은 원칙을 세우면 야식 먹는 횟수가 줄고 욕구도 준다. 원초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효과가 있다. 그런데 요즘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 전략이 불현듯 떠오른다. 경기도청 얘기다. 도청을 비판하면 줄곧 도청에서 전화가 온다. 처음에는 기사 내용에 대한 팩트 검증 얘기다. 기사가 쓰인 근거와 타당성을 하나하나 따진다. 비판받은 사람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다. 비판한 장본인으로서 성실히 답한다. 그러다 보면 두어 시간은 거뜬히 간다. 하지만 곧 연락의 본심이 마지막 물음에서 나온다."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누굽니까?" 그때 알아챘다. 이 직원이 연락한 이유는 책임을 전가할 직원 이름을 알아냄과 동시에 비판의 대가를 갚아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야기 해준 사람이 왜 궁금하냐고 되묻자 "위에다 제출할 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한다. 귀찮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효과가 있다. 비판할 시간을 빼앗는다. 특히 취재원 색출은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을 서로 감시케 해 국민 알 권리를 저해한다. 취재진과 취재원을 귀찮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전략인가 싶다.언론이 정부기관을 견제, 감시하는 것은 해당 기관이 공공기관이어서다. 견제 없는 공공기관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철옹성과 같다. 성곽 밖 국민이 취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민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이 직원들과 언론을 괴롭히는 행위는 그래서 온당치 못하다.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도청 고위공직자에게 묻고 싶다. 자신만의 철옹성을 만드느라 도민은 버렸나.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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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경기도 지역화폐 딜레마 지면기사
경기도 내 시·군 모두 지역화폐를 충전하거나 구입하면 10%의 인센티브를 준다. 인센티브율은 동일하지만 지급하는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도내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따라 인센티브가 10만원에서 1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시·군별 인센티브 충전 한도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예산이다. 지역화폐를 많이 발행하는 지역일수록 인센티브 예산 재원이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코나아이가 운영하는 경기지역화폐를 사용하는 도내 28개 시·군 중 발행량이 가장 많은 안산시(지난 6월 기준)가 예산이 가장 먼저 소진돼 지난 7월부터 인센티브 지급을 중단했다.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상황에서 이미 도내 시·군들의 예산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지역화폐를 담당하는 도내 시·군 관계자들은 10년과 20년 뒤에도 지역화폐가 사용되려면 인센티브 예산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결제 불가, 10억원 초과 매장 이용 불가라는 제약에도 소비자들이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원을 무한정 지원할 수 없는 만큼 지역화폐 정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국 인센티브 없이도 사용하는 도민들이 늘어야 한다.7월 인센티브 지급을 중단했던 안산시에서 한 달 동안 지역화폐 44억원이 발행됐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발행이 중단됐을 때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라고 한다. 안산시의 상황이 도내 전역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아니면 안산시만의 사례가 될지는 미지수다. 지역화폐가 도민들의 삶에 안착하게 될지 하나의 정책으로 종료될지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한다. /남국성 정치부 기자 nam@kyeongin.com남국성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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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폭염과 농민 지면기사
지난주 목요일 화성시 배양동에 있는 오이농장에서 농민의 삶을 체험했다. 오이 심기에 앞서 비닐하우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는 내게 어머님은 "농사일은 해 본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한 번도 없다고 답하자, 어머님은 계속 "할 수 있겠어요?"라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고, "20살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할 수 있어요!"라는 각오로 답했다.처음에는 어머님과 마주 앉아 오이를 심기 시작했다. 농사일은 왜 해보는 건지, 기자는 어떻게 됐는지 등의 대화는 오이 심기 30분가량 지나서부터 뚝 끊겼다. 간단하지만 고된 농사일이 처음인 기자와 달리 어머님은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여기에 비닐하우스 열기가 더해지면서 땀이 계속 흐르고 힘이 빠졌다. 취재해야 하는데, 오이를 심기도 벅찼다. 중간중간 어머님이 갖다 주시는 차가운 물로 더위를 달래기 바빴다."아까보다 좀 빨라졌나?" 1시간 정도 지나가자 오이 모종 심는데 나름 요령이 생겼다. 어머님도 속도를 늦추면서 짧게 인터뷰를 할 시간이 생겼다. 오이농사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그전에는 어떤 농사를 하셨는지 등 이것저것 물었고 답변만 하던 어머님도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채솟값이 오를 때만 그렇게 기사를 써?"'밥상 물가 폭등', '폭염으로 채소 가격 급등' 등 폭염이 이어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사들이다. 반대로 채소 가격이 폭락했을 때는 왜 폭락했는지, 농민들의 피해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이러한 기사를 볼 때마다 농민들은 마음이 무겁다. 채소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농민들이 수익을 더 챙기지도 않는다. 한결같이 농사짓는 농민들처럼 중간 유통 가격도 날이 춥든 덥든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머님은 "채소 가격 내려가면 농민들이 얼마나 힘든데, 그것도 좀 다뤄 줬으면…"하며 말끝을 흐렸다.마트를 다니면서 가격이 오른 채소에 한숨 쉬는 소비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농민들이 있다. 농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더욱 많이 그려지길 바라본다. /신현정 사회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