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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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이탈리아판 성수대교 지면기사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으로 1994년이 선택된 것은 '그 해'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전환점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94년 여름은 기상관측이래 최대의 폭염으로 기록된 해였다. 북한 김일성이 사망한 것도, 인간말종 지존파 사건이 터진 것도 1994년이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교육 이데아'를 불러제껴 문화적 대 충격을 가져온 것도 1994년이었다.무엇보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성수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붕괴'는 대한민국 급성장 과정에서 만연된 부실공사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준공된 지 15년밖에 안 된 다리의 붕괴로 출근하던 회사원, 등교하던 학생 등 49명이 탄 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해 31명이 사망했다.성수대교 붕괴는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저질러졌던 부실공사의 문제점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 무엇보다 안전공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듬해 그 끔찍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는 묵시적인 국민적 대 합의가 이뤄졌다.14일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있는 모란디 다리 80m 구간이 무너져 사망자 수가 42명을 넘어섰다. 이 사고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성수대교'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가 놀란 건 어떻게 이런 후진국적 사고가 한때 세계 경제 5강을 구가했던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경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2007년 5.7%를 기록했던 실업률은 지난해 11% 선에 머물고,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2% 수준으로 EU 회원국 중 그리스 다음으로 많다. 다리의 부실한 유지관리가 도마에 오른 것도 만성적인 재정위기 탓이란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정치상황도 최악이다.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 이후 네 명의 총리가 권좌를 오르내렸다. 그 틈을 노려 부패 스캔들과 재정 위기를 초래하고 물러났던 83세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정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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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안희정 재판의 '정조(貞操)' 논란 지면기사
여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의 위력관계는 인정하나, 안 전 지사의 위력행사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향과 후폭풍이 엄청나다. 여성단체의 반발과 저항이 예사롭지 않다. 한 여성단체의 집회에서는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피켓이 등장했고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는 유죄"라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미투 운동의 종결지여야 할 법원이 '성폭력 관련 사법논란'의 진원으로 주목받는 양상이다.'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언 그대로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 김지은씨가 1심 판결에 대한 입장문에서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주장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여성단체는 "지난 7월 6일 비공개 피해자 심문에서 재판부가 김씨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고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김씨와 여성단체의 전언대로 재판부의 '정조' 발언이 사실이라면, 1955년 박인수 사건 1심 판결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해 70여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장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에게 정조를 지킬 의무를 강제했던 유교문화가 정정했던 50년대의 판결이었다. 1994년 성폭력방지법 제정과 함께 '정조'라는 단어는 법전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2018년 법원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에게 '정조' 운운 했다면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남성들은 박인수 재판에서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1심 무죄판결만 기억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댄스홀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내놓은 정조가 아니다"며 "고의로 여자를 여관에 유인하는 남성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인수는 간음죄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상고 기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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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광복절 아침에 지면기사
광복절 아침이다. 73년 전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광복 그날의 풍경은 이랬다. "그때, 분명 그때, 뜰에는 이상한 여름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지만 원추리와 능소화 같은 낯선 꽃들이 우리를 그렇게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8월의 하늘을 향해 마치 용(龍)의 비늘처럼 번득이며, 솟구치는 한 폭의 깃발이 있었다. 성조기도 아닌, 유니언 잭도, 청천백일기도 아닌, 더더구나 일장기도 아닌, 처음으로 보는 그 깃발이 우리들의 어린 가슴을 북처럼 자꾸 두들기고 있었다."벼락같이 다가온 해방. 처음 태극기를 보았을 때의 감흥을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은 이렇게 썼다. 태어나서 처음 본 이상야릇한 깃발이었지만 무엇이 어린 가슴을 두드렸다. 비단 이어령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73년 전 오늘 그 또래들에게 해방이 준 선물인 '태극기와의 조우'는 그런 흥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은 광복 73주년이다. 하지만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건국을 둘러싼 논쟁으로 '광복절'은 이제 공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년 이어령과 그 또래의 가슴을 두드렸던 환희의 '그날'이 아니다. 그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 건국일 끝장토론'까지 열렸다. 우파 진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좌파 진영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격앙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 내년이 더 두려워진다. 이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는 내년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칠 모양이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도산 안창호의 나라 사랑은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다. 망하게 한 책임자가 누구냐. 그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손톱을 박게 하였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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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문재인 정부와 연금 개혁 지면기사
정부가 지난 주말 국민연금 개선방안을 슬쩍 흘렸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혼비백산, 일요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근해 "정부안이 아니다"고 발뺌하는 소동을 벌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비난성 청원으로 도배됐다. 국민연금 폐지 주장 부터 '죽기 전에 받아볼 수 있는거냐'는 조롱이 넘쳤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직접 진화에 나서야 했다.분명한 건 국민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제도 자체는 유지해야 하고, 유지하려면 개선과 개혁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635조원의 기금은 세계 3위 규모이지만, 기금고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5년마다 70년 후의 연금재정을 감안해, 수령 시기와 금액을 조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출산, 저성장 추세가 완연한 우리사회는 연금재정 고갈 시한이 단축되면서 보험료 인상, 가입연령 상향, 수급개시 연장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문제는 성난 민심이라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에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개혁에 딴죽을 걸었던 정부·여당이 이제 '방울 술래' 순서가 됐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연금 개혁 보다는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 경영 감시방안을 고민했다. 정작 기금을 살찌울 기금운용본부장은 1년째 공석이고 운용수익률은 역대 최악이다.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네번의 결혼으로 반지의 제왕이라는 비아냥을 샀지만, 독일 경제호황의 기반을 마련한 정치력으로 유명하다. 98년 총리 취임이후 7년간 노동자 해고 제한 규정 완화, 연금수령 연령 연장, 의료보험 본인부담 확대 등 경제개혁 조치를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정권을 잃었지만, 독일경제는 통일 후유증을 털고 다시 비상했다. 올 초 방한 때는 "지도자는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잃을 각오로 국민연금 등 4대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에 매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수구보수 궤멸과 사회개혁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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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바닥신호등 지면기사
지하철을 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을 내밀어 스마트폰을 보는 자세가 마치 거북이 같다. 오랜 시간 이런 자세를 취하다 보니 거북이 목처럼 목이 앞으로 구부러져 '거북목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들을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족'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려 주변을 인지하지 못한 채 걸어가는 좀비에 빗댄 말이다. 스몸비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육교에서 굴러떨어지거나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 발이 끼여 골절되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요즘은 '로드 킬' 당하는 고라니를 빗대 스마트폰을 보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스몸비족을 '폰라니(스마트폰+고라니)'라고 부른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시는 건널목을 건너면서 스마트폰을 보다 적발되면 15달러에서 최대 99달러까지 벌금을 물린다. 수원시와 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들이 사거리 건널목에 바닥 신호등을 시범 설치했다. 스몸비족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에 정신 놓지 말고 바닥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너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마당에 많은 예산까지 들여가며 바닥신호등까지 설치하는 친절을 베풀어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가 스마트폰 중독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하철에는 시력보호를 위해 조명등을 설치하고, 덜컹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완충용 좌석까지 설치해주라는 조롱 섞인 말도 들린다.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은 많은 연구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2011년 데이비드 레비 미 워싱턴대 교수는 SNS 등 디지털에 중독됐을 때 사람의 뇌는 생각 중추인 회백질이 줄어들어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술과 담배의 중독성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서구에선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여 오프라인의 여유를 찾자는 '디지털 디톡스(detox·해독)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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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김상곤의 교육 실험 지면기사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경기도교육감 재직 시절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시행, 혁신학교 도입 등 보편적 교육 복지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나름 혁신이라 생각했겠지만, 경기도는 하나의 거대한 교육 실험장이 됐다. 그 결과 '2012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김 교육감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경기도 혁신학교의 성적은 다른 학교들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의 반발이 컸다.문재인 정부와 함께 출범한 '김상곤 교육부'호의 다양한 교육실험은 이미 예견됐었다. 올 초 교육부가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꺾겠다며 느닷없이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발표한 게 그 좋은 예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초등 1, 2학년 영어수업이 금지됐으니 일관성 있게 진학 전 유아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교육부는 시행 1년 유예를 발표하고 문제를 덮었다.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당시 언론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의견 수렴으로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불쑥 대학입시개편안 공론화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장 관심이 많은 대학입시의 키를 국가교육회의에, 또다시 공론화위원회에 넘기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하청-재하청'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공론화 작업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혼란만 더 부추긴 꼴이 됐다. 최종 결론은 이달 중 교육부의 대입확정안이 나와야 알 수 있지만, 사안은 더 복잡해졌다. 그러자 김상곤 교육부의 무능, 나아가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김상곤 자진 사퇴' 요구가 나왔다.그럼에도 '김상곤 교육부'는 '학교폭력 개선안' '유치원 방과 후 영어학습금지' 등도 또 공론화할 예정이다. 그것이 책임회피 차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능력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교육부가 중대사안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공론화 뒤에 숨는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그러나 여론 수렴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는 공론화 실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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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미투(Me Too) 열풍 그 이후 지면기사
올해 1월 현직 검사 서지현이 검찰 내부의 성폭력 실상을 폭로하면서 미투운동 열풍이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덮쳤다. 대한민국 공권력의 상징인 검사마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가 도화선이 돼 사회 각계각층의 미투 폭로로 들불처럼 번졌다.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먼저 문화계가 거덜났다. 시인 최영미의 시 '괴물'의 'En 선생'이 재조명되면서 문단의 거목 고은 시인은 수원시가 제공한 광교 집필실에서 물러나는 한편 문학관 건립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연극계 대부 이윤택, 오태석을 비롯해 영화계의 김기덕, 조재현 등이 차례차례 피해자에게 호명됐다. 정치권에선 여권의 피해가 컸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수행여비서의 미투로 정치자산을 모두 잃었고, 서울시장 도전에 나섰던 정봉주 전 의원은 수많은 알리바이를 내세워 버티다가 결정적 증거 앞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성추행 의혹을 받은 민병두 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미투운동은 부수적인 논란도 많았다. 배우 조민기의 불행한 죽음으로 여론재판에 의한 사적 제재의 적정성 논란이 일었고, 진보진영을 강타한 미투운동의 적폐세력 음모설로 시끄러웠다.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의 선교지 성폭력사건은 교계 일각에서 그를 두호하는 바람에 교계 전체를 힘들게 했다.하지만 뜨거웠던 미투운동 열기는 남·북·미 정상회담, 6·13 지방선거를 거치며 급격히 시들었다. 사퇴 의사를 철회한 민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이 됐다. 고은 시인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명예회복에 나섰고,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서 검사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과 법정 공방 중이다. 엊그제 한 방송에서 배우 조재현의 새로운 성폭력 의혹을 방영했으나, 그동안 죄인을 자처했던 조씨도 이번엔 적극적으로 맞서고 나섰다.열풍은 가라앉고 가해와 피해의 실체를 가리는 일이 차분하게 진행중인 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권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국회에 넘긴 미투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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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전기 누진제의 역설 지면기사
좌·우파의 경제 오류를 함께 비판하는 학자로 유명해진 조지프 히스는 저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刊)에서 낮은 전기요금으로 분배정의를 겨냥하는 좌파의 시도는 '공정가격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낮은 전기료의 혜택이 저소득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수요 공급의 왜곡된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많이 사면 가격이 싸지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전기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용 전력량에 따라 처음 200kwh까지는 1kwh당 93.3원이다. 하지만 400kwh를 초과하면 1kwh당 280.6원으로 최대 3배를 더 낸다. 전기는 한국전력이 만든 상품이다. 하지만 적자가 나도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한전 주가는 2008년 8월 평균 3만1천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어제 주가는 3만450원. 10년 전 그대로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2천504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 역시 수천억 원대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생산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를 올릴 수 없어서다. 그래도 망하지 않는 것은 적자를 정부가 메워주기 때문이다. 무슨 돈으로? 물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누진제는 70년대 석유 파동 때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전제조건이 있다. 저소득층은 전기를 조금 소비하고 고소득층은 전기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저소득층의 전기 사용량이 많고, 소득이 많은 맞벌이 부부 등을 포함해 1~2인 가구의 전기사용량이 오히려 적다. 노약자가 많고, 다자녀 가구일수록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전기사용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누진제가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 이래서 나왔다. 그런데도 당정은 7·8월 두 달간 누진제를 완화해 주기로 했다. 1단계·2단계 누진 구간을 늘려 1단계는 200kwh에서 300kwh로, 2단계는 400kwh에서 500kwh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총 2천761억원의 요금인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을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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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불자동차 BMW 지면기사
애플 1천828억 달러, 구글 1천321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1천49억 달러. 지난 5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브랜드 가치평가 1~3위 글로벌 기업들이다. 삼성은 476억 달러로 7위를 차지해 아시아 기업 최고 브랜드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기업 브랜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이다. 평판이 좋은 브랜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충성스러운 고객층을 형성해 미래의 시장을 보장한다. 최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애플은 브랜드 자체가 혁신과 문화의 아이콘으로 전지구적인 추종자를 거느린다. 구찌, 프라다, 루이뷔통에 대한 열광은 비판받을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당연히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를 지키거나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대형사고에 대한 위기대응 방식이 중요해졌다. 책임을 미루고 발뺌하다가 오명을 키운 사례가 많아서다. 미국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알래스카 해안 2천㎞를 오염시킨 유조선 좌초 사건으로 70억 달러의 사고수습 비용을 쓰고도 업계 1위에서 3위기업으로 전락했다.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한 페달게이트로 도요타는 천만대 리콜비용은 물론 소비자에게 11억달러를 물어줘야 했다. 이와 별도로 시가총액 22조원이 증발했다.서민에게는 꿈의 자동차인 BMW가 한국에서 단단히 사고를 쳤다. 올해에만 32대의 BMW 520d 승용차가 주행중에 불이 났다. 가장 최근엔 안전진단까지 받은 자동차마저 불이 나면서, 차주들은 현재 진행중인 리콜마저 믿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BMW는 왜 한국에서만 불자동차가 된건지 설명을 안하고,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대책이라고 내놓은게 주행자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이 한심하니 BMW는 여기저기서 주차거부를 당하고, 차주들은 집단소송에 나섰다. 314억 달러의 BMW 브랜드 가치가 무색해졌다.6일 BMW코리아가 대국민사과를 했다. BMW 본사는 기자회견에 기술자를 보낸게 고작이니, 이 또한 한국 고객과 한국을 무시한 처사 아닌가. 미국에 '디젤 게이트' 손해배상금으로 147억 달러를 낸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선 141억원의 과징금으로 면피한 전례를 따를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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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인천 1978년 동일방직 지면기사
1978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가 최규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행사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50여 명의 여성이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념식은 중단되고 생중계되던 방송은 세 번이나 끊겼다. 한국노총행동대에 두들겨 맞고 머리채를 잡히며 밖으로 끌려나간 이들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었다.그로부터 10여 일 후, 3월 26일 새벽 5시30분 여의도 5· 16광장. 수십만 명이 모인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는 기독교방송이 전국에 라디오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6명의 여성노동자가 단상 중앙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쳤다.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2주 연속 발생한 사태는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이 둘 다 1978년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일어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날은 동일방직 대의원 대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새벽 6시경 남성노동자들이 투표작업을 준비 중인 노조사무실로 난입해 똥물을 뿌리고 여성조합원의 얼굴에 인분을 묻히는 '똥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훗날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이듬해 8월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박정희 유신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에 동일방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이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인천 동일방직이 8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경인일보는 동일방직이 지난해 말 가동을 끝내 공장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대신 이 자리에 산업사적, 노동사적 의미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동일방직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늘진 노동현장과 시대의 아픔 등 한국경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1934년 일본 동양방적 인천공장으로 문을 연 동일방직은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의 문학적 무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