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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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태양광 시대 지면기사
우리도 '황금광 시대'라는 게 있었다. 금을 찾는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그런 시대 말이다. 발단은 1930년 1월 일본의 금 수출 재개 선포였다. 준비 없이 화폐와 금의 가치를 연계시키는 금본위제도를 시작한 일본은 오히려 금이 해외로 급속하게 유출되자 당황했다. 끔찍한 대공황을 겪던 전세계 모든 국가가 "역시 금이 최고!"라며 금 확보에 혈안이 된 걸 몰랐다. 일본은 10개월 실시하다가 금 수출은 물론 수입마저 금지했다. 그리고 금 확보에 나섰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골드 러시, 황금광시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금을 수입할 수 없으니 온 산하를 까뒤집어서라도 금을 찾아야 했다. 금이 나온다는 소문만 들리면 지식인 농민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산이건 농지건 하천이건 모두 파헤쳤다. 살인, 도박, 패가망신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오죽하면 일확천금을 노리며 금광으로 떠났던 김유정과 한때 금광 브로커 노릇을 했던 채만식이 각각 소설 '금 따는 뽕밭' '금의 정열'을 써서 식민지 시대의 금광 열풍을 비판했다. 지금 대한민국 온 산하가 태양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저수지, 농지, 건물 옥상 등 가릴 것 없이 태양광 설비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를 분양한다며 온·오프라인에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업체가 급증하고, 연 수익률 10~20%를 장담하는 전화가 투자자를 유혹한다. 땅 투기를 노린 '태양광 떴다방'도 성행하고 있다.이런 열풍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더 뜨거워졌다. 탈 원전을 선언한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높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48.7GW 확충키로 했다. 이를 위해선 여의도 면적의 168배의 부지가 필요하다. 특히 공기업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는 한국전력이 의무적으로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최대 20년간 사주기로 했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저수지 4천여 개를 관리하는 농어촌 공사, 전국 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까지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한때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에 수백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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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평택항 붉은불개미 지면기사
지난해 9월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1천여마리가 발견돼 소동을 일으켰던 붉은불개미가 지난 18일 평택항컨테이너터미널에서 출현해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부산항 붉은불개미 발견 직후 전국의 내륙컨테이너기지를 수색했지만 종적이 묘연했었다. 정부는 올해 1월 3일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하고 붉은불개미 군단의 상륙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2월 인천항에 도착한 중국산 고무나무 묘목에서 1마리, 5월 부산항 수입 건조대나무 컨테이너에서 2마리 등 군단의 척후병들이 출몰하더니 급기야 평택에서 700여 마리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소동의 이유는 붉은불개미의 악명 때문이다. 남미가 원산지인 붉은불개미는 엉덩이의 독침으로 솔레놉신이라는 독성물질을 주입한다. 독침에 쏘이면 솔레놉신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사망할 수도 있어 '살인개미'로 불린다. 북미에서만 한해 8만명 이상이 독침에 쏘여 100여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또 도시의 건축물에 집을 지어 피해를 발생시키는데 붉은불개미로 인한 미국의 경제손실 추산액이 60억 달러에 이른다니 만만히 볼게 아니다.더 큰 문제는 무자비한 공격성으로 상륙지의 토종 개미를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는데 있다. 식용자원으로 도입했던 황소개구리, 뉴트리아, 배스, 블루길이 토종 생물을 말살해 하천 생태계가 초토화된 실정을 상기하면 심각한 일이다. 붉은불개미는 불청객을 넘어 침략군에 가깝다.우리 문화에서 개미는 근면을 상징하는 곤충이다. 대붕의 꿈을 꾸되 개미처럼 살라는 붕몽의생(鵬夢蟻生)은 큰 꿈을 이루려면 하루하루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경구다. '개미 금탑 모으듯 한다'와 같이 미약한 업(業)의 누적이 이루어내는 커다란 업적을 개미의 노고에 빗댄 속담도 많다. 반면에 주식시장의 개미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을 누리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로 치부되기도 하니, 이 땅의 개미는 이 땅의 보통사람을 닮았다.그런데 붉은불개미가 토종개미를 몰아내면, 서민을 위로할 개미의 우화는 사라지고 살인개미의 공포만 남을테니 인문자산의 상실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나마 붉은불개미는 다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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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스마트 패스 인천공항 지면기사
지난 5월 21일 중국 공안은 저장성 자싱시에서 열린 홍콩 스타 장학우 콘서트장에서 수배 중인 용의자를 CCTV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해 체포했다. 현장엔 팬 약 6만 명이 모여 혼잡한 상황이었지만, 중국 인공지능회사 '이투커지'의 안면인식기술은 이런 악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달 영국 윈저성에서 열린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의 세기의 결혼식에는 아마존의 안면 인식 기술 프로그램 '레코그니션'이 이용됐다. 이 기술로 하객으로 참석한 전 세계 유명 인사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SF영화가 그리는 미래사회는 신분증이 필요 없다.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1990)엔 우주정거장에서 화면에 얼굴을 대면 얼굴 형태나 홍채로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가 그려낸 2054년 미래사회 역시 집과 사무실의 출입문 잠금장치, 지하철 요금 지불 등 모두 안면인식과 홍채인식이 대신한다. 상영 당시 '영화가 너무 오버한다'고 여겨졌던 이런 풍경이 이젠 어두운 콘서트장에서 범인을 잡고, 수천명이 모인 결혼식 하객들의 신원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평범한 일상사가 돼가고 있다. 중국과학원이 개발한 '안면인식 기술의 보안검사 보조 검증 시스템'은 13억 중국인 얼굴을 단 3초 만에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라는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이 반체제 인사 동향 감시나 소수민족 탄압 등에 쓰일 수 있지 않느냐는 '빅 브라더'의 우려가 괜한 게 아니다.이르면 내년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탑승권이나 여권 없이 출국할 수 있는 '스마트패스' 서비스가 시범 도입된다고 한다. 사전 등록된 안면인식 정보 프로그램 덕분이다. 또 2020년부터는 지문, 얼굴 등 정부가 관리 중인 생체정보를 활용해 사전등록 없이도 전 국민이 스마트 패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세상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우리의 삶이 편해질수록 사생활은 누군가에 의해 노출되게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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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정당의 흥망성쇠 지면기사
일본에서는 2차세계대전 패배와 군부정권 몰락 이후 정계혼란이 지속됐는데 1955년 보수우파 자유당과 보수좌파 민주당이 합당한 자유민주당의 등장으로 1당 장기집권시대를 열었다. 이후 1993년 8월부터 1996년 1월(2년 5개월), 2009년 9월부터 2012년까지(3년 3개월)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총리를 만든 집권여당으로 군림 중이다. 자민당 천하의 일본은 눈부신 경제부흥을 이루었지만, 천박한 역사의식과 평화헌법개정 추진 등 1당독주의 폐해도 심각하다.한국 정당사에도 자민당의 사례가 떠오르는 전대미문의 정치사건이 있었다. 1990년 노태우 전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 전국무총리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을 선언한 1·22 3당합당이다. 이렇게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국민이 13대 총선에서 결정한 여소야대를 단숨에 뒤집어 218석의 초대형 1당으로 등장했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과 민주당 탈당파로 창당한 꼬마민주당으로 구성된 야당 진영은 초토화됐다. 합당의 동력은 내각제개헌을 통한 계파간 정권 돌려먹기였지만, 철들 무렵 부터 대통령이 꿈이던 YS에 의해 휴지조각이 됐다.알려진대로 애초 노 전 대통령의 보수대연합 대상은 YS 보다 DJ였다. 하지만 호남의 적자인 DJ는 광주를 짓밟은 5공 정권의 후신들과의 연합을 상상할 수 없었고, 대신 YS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며 덥석 물었다. 이후 YS는 호굴(虎窟)을 접수했고, DJ는 내각제개헌을 배신당한 JP와 연합해 대권을 차지했다. 꼬마 민주당에 잔류했던 노무현은 간난신고 끝에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었으니, 3당합당은 사건으로서도 충격적이었지만 영웅(?)들의 영고성쇠가 압축적으로 전개된 정치 대하드라마의 배경이기도 했다.민자당은 이후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존속되다가 지금의 자유한국당에 이르렀지만, 6·13지방선거로 궤멸적 타격을 입어 폐당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민자당 창당 26년만에 국민투표로 대구·경북에 강제고립됐으니,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호남을 고립시켰을 때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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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공은 둥글다 지면기사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축구 세계 최강은 헝가리였다. 전쟁이 끝난 후 어렵게 경기에 출전한 대한민국은 예선에서 이런 헝가리에 0대9로 패하는 치욕을 겪었다. 서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선에서 헝가리에 3대8로 졌다. 서독은 결승에서 헝가리와 다시 만났다. 결승전이 열리기 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서독의 제프 헤어베어거 감독은 명언을 남긴다. "공은 둥글고, 축구는 90분 동안 계속된다." 서독은 헝가리를 3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에서 '이변'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공은 둥글다'는 이렇게 유래됐다.월드컵에서 '이변'은 자주 일어난다. 그중 1966년 영국 월드컵의 북한과 이탈리아 경기를 빼놓을 수 없다. 북한 팀이 영국에 도착했을 때 언론은 북한팀에 '알 수 없는 사내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런 팀이 16강에서 이탈리아를 1대0으로 격파했다. 이 일로 이탈리아 선수들은 성난 축구 팬들이 던지는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고 귀국해야 했다.월드컵 사상 최대'이변'으론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잉글랜드와 미국의 경기를 꼽는다. 잉글랜드는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0대1로 패해 월드컵 경기사상 최대 '이변'의 희생물이 됐다. 1대0 패배 소식이 전신을 타고 전해지자 영국 신문 체육면 편집자들은 오타가 난 걸로 알았다고 한다. 10대0 승리인데 '0'자가 빠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럴만한 건 미국 선수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축구가 비인기 종목이었던 미국에선 프로팀이 하나도 없어 선수를 구성하는 게 어려웠다. 결국 볼 좀 찬다는 아르바이트 식당종업원, 견습 회계사, 우체부, 교사 등으로 팀을 꾸렸다. 이런 팀에게 패했으니 축구 종가 영국은 초상집이 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 팀이 귀국했을 땐 이들에게 관심을 둔 언론과 미국민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북미회담, 지방선거 이슈에 묻혀 우리가 무관심했던 사이,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됐다.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같은 조에 속한 우리는 전력 면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다. 3전 전패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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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북극곰 '통키' 지면기사
2006년 12월 5일 베를린 동물원에서 북극곰 두 마리가 태어났다. 다년간 교배와 연구 끝에 어렵게 결실을 본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의 어미 토스카는 새끼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한 마리를 돌덩이에 내팽개쳐 죽이기까지 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동생 크누트는 사육사의 극진한 보호 아래 자랐다. 커가면서 예쁜 짓만 하던 크누트는 금세 동물원의 자랑이 되었다. 크누트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동물원을 찾았다. 언론에 보도된 '고아 분투기'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크누트 :작은 북극곰 한 마리가 어떻게 세상을 사로잡았나'라는 책도 출간됐다.크누트가 4년 3개월이 되던 2011년 3월 어느 날 아침, 크누트는 좋아하는 크루아상을 던져 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크누트는 제 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뒤쪽 연못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크누트의 죽음은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동물은 자연에 있어야 한다' '동물원이 크누트를 스타로 만들려다 스트레스 받아 죽게했다' 등등. 수많은 질책과 책임 전가 끝에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때 왜 어미 토스카는 크누트를 버린 거지?" 그 누구도 토스카가 왜 크누트를 버렸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무관심했던 것이다. 심지어 토스카에 대한 기록도 없었다. 다만 토스카가 동물원에 오기 전 북극의 빙하 속에서 바다표범을 잡아먹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서커스단에서 묘기를 부리며 살았다는 것만 알려졌다.용인 에버랜드가 우리나라 유일한 북극곰 '통키'를 영국 요크셔 야생 동물공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1995년 마산의 동물원에서 태어난 통키는 올해 24살, 인간 나이로는 75살 고령이다. 에버랜드는 홀로 외롭게 살았던 통키를 위해 북극곰 추가 도입과 해외 이주를 고민하다 이런 결정을 내렸다. 동물들은 늘 환경단체의 표적이다. 우리에 두지말고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야생에 적응 못해 죽든 살든 그건 차후 문제라는 것이다. 어린이 대공원 돌고래 '제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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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김정은의 주유천하 지면기사
공자는 자기 인생을 기준으로 30대를 이립(而立)이라 칭했다. 자립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기 한몸 겨우 일으킬 무렵인 30대에 역사를 바꾼 영웅들이 적지 않았다. 1769년 생인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등극한 때가 1804년이니 만35세에 이룬 영광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56년에 태어나 20세에 도시왕국 마케도니아를 물려받았다. 이를 밑천으로 동방정벌에 나서 나이 서른에 대제국을 이루고 페르시아의 샤한샤(왕중왕), 이집트의 파라오를 겸임했다. 그마저도 성에 안찼는지 스스로 아시아의 군주라 칭했다.조(趙)씨인지 여(呂)씨인지 불분명한 진시황이 나라를 물려받아 천하를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 건 39세 때의 일이었다. 온라인 세상을 열어젖힌 IT기업가들의 출세가도는 한 술 더 뜬다. 1984년 생 유태인 마크 저커버그는 34세에 시가총액 5천억 달러의 페이스북 지배자가 됐다. 지난해 860억 달러의 재산으로 세계 갑부 1위에 오른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했을 때 나이가 만 스무살이다.2018년 6월 12일 세계는 국제외교무대 중심에 당당하게 진입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목격했다. 그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오르며 3대세습을 개시한 때가 27세였던 2011년의 일이다. 북한의 청년 지도자는 섭정인 줄 알았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연이어 핵실험을 강행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철부지의 망동을 경계하는 미국의 군사위협과 경제제재로 한반도 긴장은 높아졌다.저커버그와 동갑인 김정은이 올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세계로 나왔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전격 파견하더니 순식간에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트럼프가 눈을 부릅뜨니 문재인 대통령을 불러 2차 정상회담을 열어 달래고, 시진핑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두번이나 중국을 찾아 달랬다. 문 대통령과 판문점 도보다리를, 시진핑과 해변을, 트럼프와 호텔을 산책할 때 마다 국제적 위상이 일취월장했다. 부친 뻘인 문 대통령과 트럼프가 김 위원장의 지도력을 최고의 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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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성공한 회담과 실패한 회담 지면기사
20세기 초 '협상'은 겁쟁이들이 '선택'하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협상하자고 손을 내밀면 그것은 곧 '굴복'을 의미했다. 희생이 담보되는 전쟁을 치러 상대방 무릎을 꿇리는 것이 '갈등의 끝'이라고 믿었다. 협상하고 타협했다면 무고했을 많은 사람들이 권력자의 정치 놀음에 목숨을 잃었다.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갈등을 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협상'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세계 외교사에 협상의 중요성을 알려준 건 '13일의 교훈'이었다.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하면서 미·소간은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13일 동안 전 세계를 긴장시킨 이 세계사적 사건은 위기 극복에 있어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소련과의 협상을 슬기롭게 끝낸 존 F 케네디의 나이는 불과 47세였다. "무능한 지도자는 위기를 만들고, 유능한 지도자는 위기를 해결한다"는 말이 그때 나왔다. 1978년 9월 열린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의 '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 회담'은 겉만 화려할 뿐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는 협상이었다. 회담 중재자는 집권 내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지미 카터 미 대통령. 그는 이 회담을 반드시 성공시켜 무능하다는 오명을 벗고 싶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실제 회담 내내 두 사람은 상대를 인정하지도,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지도 않았다. 카터는 회담을 빨리 끝내려고 서둘렀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는 평화조약에 서명했고 사다트와 베긴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중동에는 평화가 오지 않았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과 가자지구 문제를 해결했다면 중동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카터 대통령의 이름도 중동사에 길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로켓맨' '불망나니, 늙다리 미치광이' 라며 저열한 말 폭탄을 주고 받으며 일촉즉발 위기까지 갔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어제 각각 6개의 성조기와 인공기 앞에서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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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김부선 사태' 지면기사
배우 김부선 씨가 지난 10일 공영방송 저녁 메인뉴스 인터뷰에 등장하는 등 6·13 지방선거 이슈메이커로 부상했다. 김씨는 방송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사적관계'가 사실이라고 밝혔고 이 후보는 이를 재차 부인했다. 하지만 도지사 후보들의 '정치공방'이 김 씨와 이 후보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려야하는 '진실규명' 수순으로 비화한 건 틀림없어 보인다.애초에 자유한국당이 이 후보를 겨냥해 소위 '형수욕설 파일'을 공개하고, 바른미래당 김영환 경기지사 후보가 두차례 TV토론에서 김 씨와 이 후보의 '사적관계 의혹'을 제기할 때 만 해도 여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이 후보가 출마한 성남시장 선거와 민주당 대선후보경선 과정에서 검증된 스캔들이어서, 열세인 야당 후보들의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치부됐다. 표만 되면 악마하고도 손을 잡는다는 선거 격언을 떠올린 것이다.문제가 복잡해진 건 한 언론인이 김 씨에게 이 후보와의 관계를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로 정리해 SNS에 게재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작가 공지영이 언론의 금도를 거론하며 김 씨를 옹호하고 나서면서다. 파문이 진실게임 사태로 번졌다. 또 영화감독 정윤철은 공 작가를 향해 "김부선 스캔들을 미투 프레임에 엮으려는 건 번지수가 한참 어긋나는 과욕"이라고 비판해 장외공방의 외연을 확산시켰다.딱해진 건 경기도다. 만만치 않은 선거후유증이 예상된다. 바른미래당은 이 후보를 허위사실공표 등의 혐의로 고발한데 이어, 선거불복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 후보 또한 수차례 선거 후 일괄 법적대응을 공언했으니 법정공방이 불가피해졌다.더 딱한 건 김부선 씨와 그의 딸 이미소 씨다. 김 씨는 "딸 혼삿길까지 막을 수 없었다"는 심경을 밝혔다. 딸 이 씨는 공개서한에서 "(스캔들을 알고) 엄마에게 손편지를 써 함구해달라 부탁했다"며 "더 이상 선거잔치에 저희를 초대하지 않기 바란다"고 논란의 종결을 희망했다. 이 후보가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여론의 한 복판에 노출되는 모녀의 잔인한 세월을 짐작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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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세기의 담판 지면기사
TV 리얼리티 쇼의 원조로 전문가들은 1999년 네덜란드방송에서 선보인 '빅 브라더'를 꼽는다. 9명이 출연해 100일 동안 한집에 사는 모습을 24대의 카메라와 60여개의 마이크를 통해 제작 방영됐는데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사람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가', '관음증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리얼리티 쇼는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미국에선 2000년 2월 폭스 TV의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가', 8월 무인도에서 16명의 사람이 생존 투쟁을 벌여 최종 승자가 100만 달러를 차지하는 CBS TV의 '서바이어'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무한경쟁과 승자 독식 형태의 생존 리얼리티 쇼가 예능프로의 주류를 이루면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미국인들에게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는 미국 NBC 리얼리티 비즈니스 쇼 '수습사원(Apprentice)'이었다. 2004년 시작된 이 프로는 참가자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한 명이 연봉 25만 달러를 받고 트럼프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내용이다. 이 프로에서 트럼프는 한 명씩 떨어뜨릴 때마다 "넌 해고야! (You are fired)"를 마구 내뱉었고 이 말은 유행어가 됐다. 이 리얼리티 쇼가 트럼프의 대중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가 대통령에 출마한 뒤였다. 내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형 리얼리티 쇼가 될 전망이다. 올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 시작된 이 리얼리티 쇼는 내일 두 사람이 만나 회담을 가짐으로써 사실상 시즌 1이 마감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리얼리티 쇼의 '극적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즌 2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전 세계 미디어가 이 회담을 주목하고 있으니 흥행은 일단 '대박'인 듯 보인다. 다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트럼프 김정은 두 사람에게 집중돼, 한반도 평화의 운전대를 잡으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