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황장엽과 태영호 지면기사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북한을 탈출한 건 1997년 2월 12일이었다. 그는 한때 북한 권력 서열 13위였다. 고위급 인사 망명에 고무된 김영삼 정부는 그에게 부총리급 예우를 해 주었다. 하지만 1년 뒤 정권이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는 그가 적극적인 대북 활동을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해 햇볕정책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해서다.김대중 정부의 우려대로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북한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일에 열의를 바쳤다. 2002년에는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출간해 김대중 정부로부터 큰 미움을 받았다. 주체철학으로 북한 체제를 설계한 그가 탈북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그와 가까웠던 가족 친구 제자 등 2천명 이상을 숙청했다. 부인은 자살하고 자식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진보 정권 10년 동안 황 전 비서는 사실상의 출국금지 또는 연금 상태였다. 그에게는 10년의 세월이 자신이 꿈꾸었던 통일의 싹이 뿌리째 뽑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절망의 세월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2010년 10월 안가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생전에 그는 "김정일의 폭정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 보다 진실을 외면하는 일부 남한 사람이 더 문제"라고 늘 걱정했다.2016년 8월 박근혜 정부 시절 망명한 태영호 전 북한 영국 공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에서 사퇴했다. 최근 그는 증언집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출간하고 남남갈등의 가운데 서 있었다. 지난 14일엔 국회에서 출판기념 강연회를 갖고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웠다"고 그와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태 전 공사가 기자회견 하면서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그를 추방하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
[참성단]카메라 디스토피아 지면기사
방송인 이경규를 스타덤에 올린 건 '몰래카메라'다. 1991년 모 방송국 예능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로 선보이자 마자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난처하게 조작된 상황에 갇힌 유명 연예인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을 당사자만 쏙 빼고 진행자와 시청자가 한 통속이 돼 깔깔대며 즐겼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최진실을 천사옷을 입혀 공중에 매달거나, 웨이터를 시켜 고현정에게 물벼락을 때린 뒤 그 반응을 수많은 '몰카'로 찍어 편집하는 방식이다.몰카의 선풍적인 반응 덕분에 코너 MC인 이경규는 '일밤' 메인 MC 최수종, 주병진의 인기를 능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언제 당할지 모르는 스타들 사이에선 '몰카 공포증'이 번졌다. 배우 최민식은 봉투에서 출연료를 꺼내 세어보는 장면이 방영된 이후 화장실에서 돈을 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지금 같으면 방송사의 갑질로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했다. 실제로 몰래카메라 시즌2 (2005~2007)는 가학적 설정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민언련 선정 '2007년 올해의 나쁜방송'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설정이 아닌 진짜 몰래카메라 시대가 활짝 열렸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영상 콘텐츠를 유포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낳은 카메라 포비아 증후군으로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사건 여성 피의자 구속이 계기가 됐다. 경찰이 여성 피의자를 신속하게 구속 기소하자, 여성들이 단단히 뿔났다. 경찰은 혐의자가 특정된 탓이라 변명했지만, 여성들이 분통을 터트린 이유는 몰카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인데, 수많은 남성 가해자 중 극히 일부만 사법처리되는 현실에 있다. 2017년 몰카 피의자 5천437명 중 남성이 5천271명(96.9%)이었고, 2016년은 전체 피의자 4천491명 중 4천374명이 남성이었다. 구속자는 2016년 135명, 2017년 119명에 불과했다.몰카 범죄는 갈수록 은밀해지고 확산일로다. 급기야 최근 인천의 한 학교에서는 여교사의 치맛속을 몰래 찍던 고교생이 현장에서 딱 걸렸다.
-
[참성단]숲으로 간 수원연극축제 지면기사
프랑스 아비뇽은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여름이면 수십만 명이 몰려드는 도시로 변한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아비뇽 연극제 때문이다. 덕분에 인근 마르세유, 니스도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말이 연극제지 이젠 장르도 다양해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연극, 음악,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공연 진수성찬'이다.첫술부터 배부른 건 아니었다. 1947년 연출가 겸 배우 장 빌라르가 문화의 부재로 심각한 심적 박탈감을 갖던 프랑스국민을 위해 아비뇽 교황청 앞마당에 무대를 꾸미고 연극 3편을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14세기 아비뇽은 교황의 거처였다. 그때 지어진 견고한 고딕 석조 건물인 교황청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극제가 시작되면 이곳 안마당 '쿠르 도뇌르'엔 2천석의 대형 공연장이 마련된다. 장 빌라르는 "연극은 고대 그리스 작품처럼 야외극장에서 대규모로 이뤄질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꼽는 아비뇽 연극제 성공 원인은 두가지다. 첫째 연극을 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것이다. 왕족,귀족 등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연극 무대를 과감하게 광장, 거리, 공터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니 대중이 환호와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비뇽은 도시 전체가 중세 성벽들에 둘러싸인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분위기가 연극과 궁합이 잘 맞았다. 무대만 만들면 모든 곳이 천연 공연장이었다. 조명과 성곽의 조화는 아비뇽 연극제 성공의 밑바탕이었다.영국 에딘버러 축제도 마찬가지다.수원연극축제가 오는 25일부터 3일간 열린다. 장소는 매년 열리던 화성 일대가 아닌, 서둔동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 '경기 상상 캠퍼스'다. 장소 변경의 표면적 이유는 '미세먼지와 더위' 때문이라고 한다. 수원연극축제는 1996년 첫 선을 보였다. 중간을 건너 뛴 해도 많았고 명칭도 들쭉날쭉이었다. 어느 해에는 '세계 연극제'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륜이 22년이 됐음에도 '개성없는 연극축제'라는 눈총을 받았다.
-
[참성단]부처님 오신 날 지면기사
보리수 아래에서 마침내 득도한 석가모니.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려 세상에 나선다. 그 길에 처음 만난 중생이 그의 비범한 안색을 살피더니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석가모니의 답이 이랬다.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럽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리고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이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자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正覺) 이루어 고요하다./ 이제 법을 설하려 가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의 북을 울려라." 선각자의 사명으로 중생 제도(濟度)에 나선 석가모니의 출사표로서 부족함이 없다.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지 60년 뒤인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이 중국으로부터 불상과 경전을 받아 불교를 공인하면서 한반도 불교역사가 시작됐다. 기독교가 예수 부활 이후 급속하게 서방세계를 점유한데 비해, 기원전 5~6세기 무렵에 탄생한 석가모니의 불교는 거의 천년만에 동방의 끝자락에 다다른 셈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공간적 차이와 개인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소극적 포교방식이 원인 아닐까 짐작해본다. 대기만성인가. 전래는 늦었지만 한반도의 불교는 삼국의 문화를 꽃피웠고, 고려의 호국종교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수많은 유무형 문화유산을 이 땅에 남겼다.지금도 한국인은 불교의 영향권에서 생활한다. 건달, 식당, 강당, 이판사판, 야단법석, 다반사, 불가사의 등 흔히 쓰는 일상어가 불교에서 유래됐다. 산에 올라 절밥 공양받아 본 등산객이 드물지 않을테고, 호젓한 산사에서 세속의 번뇌를 놓아 본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법의 오의(奧義)를 깨친 선승들의 에피소드는 이문을 따지는 속세에 지친 중생들에게 언제나 통쾌하다. 평생을 삼의일발(三衣一鉢:가사 세 벌과 바리때 1개)로 수행에 정진한 청담은 도반인 성철을 "팔만대장경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불교에서는 불법을 깨달아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삼독(三毒)으로 탐(貪-욕심)·
-
[참성단]LG 구본무 회장 별세 지면기사
옛날 경남 진주에 구(具) 씨와 허(許) 씨가 살고 있었다. 구씨는 장사 수완이 좋았고 허씨는 만석꾼 집이었다. 이들은 의기투합해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했다. 창업 이념은 첫째도 인화(人和) 둘째도 인화(人和) 셋째도 인화(人和)였다. 영업에 강한 구씨와 숫자에 밝았던 허씨의 조화로 기업은 승승장구, LG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가문의 동업은 고 구인회-고 허만정, 구자경- 고 허준구, 구본무(LG회장)- 허창수(GS 회장)에 이르기까지 68년간 지속됐다. 구씨와 허씨의 회사 분리는 부자간·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일상화 된 우리 기업들에 회자 될 만한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회사 하나 더 갖겠다는 잡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너 리스크 무풍지대 LG'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LG LCD 설립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 리 전 회장은 LG에 16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모든 기업을 둘러봤지만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 잡음 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는 기업이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구본무 회장은 "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LG그룹의 경영을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정도(正道)경영'이다. 구인회 창업 회장은 도박이나 술 등 사행성 산업은 물론 '먹고 마시는 것'과 연관된 소비성 사업, 부동산투자 사업을 엄격히 금지했다. 구본무 회장도 "아무리 어려워도 목적 달성을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모럴 해저드에 빠져선 안된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정도경영'을 해야 한다"고 임원들에 늘 당부했다. LG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구본무 회장이 20일 만 73세로 별세했다. 구 회장은 생전 "인재 발굴 육성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큰 책무"라고
-
[참성단]선거가 사라졌다 지면기사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미당 서정주가 23세 때 쓴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자화상'의 한 구절이다. 시가 발표된 건 1935년. 벌써 8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시를 읽으면 한줄기 찬바람이 가슴 속을 쏴~하며 지나가는 느낌이다. 바람이 키운 것은 비단 젊은 시절의 서정주 시인 뿐 만이 아니다. 25세의 윤동주를 통절하게 반성케 하고 괴롭히면서 정신적 성숙을 가져다준 것도 '잎새에 이는 바람'이었다. 시에서 바람은 희망이 되기도 때론 시련의 빛깔로 나타나기도 한다.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도 바람이었다. 촉의 방통이 조조를 속여 위의 배들을 쇠사슬로 연결하는 '고리를 잇는 계책', 이른바 '연환계(連環計)'를 썼다. 208년 동짓날, 제갈공명이 예측한 대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졌다. 그 때 화공(火攻)을 펼치자 조조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누가 뭐래도 바람하면 선거판이 빠질 수 없다. 바람 없는 선거는 상상할 수 없다.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바람을 탄다고 한다. 선거 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호재를 찾아 SNS를 들락거린다. 선거를 앞두고 터지는 사건에 바람 풍(風)자를 붙이는 것도 바람이라도 타서 승리하고 싶은 정치인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안기부가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흑금성'이 저지른 공작정치 북풍(北風), 국세청장이 대기업 23곳에서 대선자금을 모금해 이회창 후보 측에 넘긴 세풍(稅風),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후 치렀던 총선은 탄핵 역풍, 즉 '탄풍(彈風)'이었다. 선거판의 바람은 마침내 역사까지 바꿨다.6·13 지방 선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선거 바람이 좀처럼 불지 않고 있다. 선거를 치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아예 사라진 느낌도 든다. 세월호 침몰사고 여파로 유례없이 조용했던 2014년 6·4 지방 선거를 닮았다. 당시 집권당은 역풍을 맞을까 대놓고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지금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
[참성단]정치인의 인격 지면기사
새뮤얼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한나라의 국력과 산업 그리고 문명은 개인의 인격에 달려있다"며 "법률과 제도는 다만 인격의 자연적인 결과"라고 인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스마일스 당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해 해가 지지않던 시절을 구가했다. 짐작컨대 급격한 경제 발전은 도덕적 타락을 수반했을테고, 스마일스는 국력에 걸맞은 국격이 국민 개개인의 인격을 통해 구현될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다.스마일스는 인격을 갖춘 신사(紳士) 감별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꼽았다. "자기 보다 약한 사람에 대한 신중함과 관용, 친절이 신사로서의 인격을 판단할 중요한 기준"이라며 프랑스 시인 라 모테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어느날 시인이 거리에서 한 젊은이의 발등을 밟았는데, 그는 무턱대고 시인의 뺨을 때렸단다. 라 모테 왈 "당신은 내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이런 행위를 후회하게 될거요." 무안함에 새빨개진 그 청년의 얼굴이 저절로 그려진다.우리 사회 도처에서 미숙한 인격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하는 시절이다. 대한항공 세모녀는 소위 갑질로, 사회적 비난과 대중의 공분을 샀다. 수 많은 문화권력자와 정치권력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여성을 희롱한 사실이 밝혀져, 자기 분야에서 평생 쌓아온 업적과 평판을 스스로 매장시켰다. 이들의 자멸적 인격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회의와 의심으로 확산된 건 더 큰 손실이다. 일부 인사의 미숙한 인격이 초래한 재앙이 이처럼 무섭다.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일 계속되는 여야 정치인들의 말폭탄도 바닥 수준 인격의 증거이니, 한국 정치는 인격의 수준 만큼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 이 와중에 최근 경기도지사 선거전이 '인격검증' 공방으로 과열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형수욕설 음성파일'을 이유로 이 후보의 인격을 문제삼았다. 이 후보는 '개인의 불행한 가족사'를 이용하는 남 후보의 인격이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음성파일이 공개될 지 모르겠으나, 공개되면 파장은 클 것이다. 형수에
-
[참성단]플라스틱 바다 지면기사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둥둥, 고뿌(컵) 없으면 못 마십니다." 1960년대 코미디언 서영춘이 불러 히트시킨 음료 광고 '사이다 송'이다. 이 노래에 인천이 등장하는 것은 이곳이 사이다의 발원지였기 때문이다. 1905년 일본인 히라야마 마쓰다로는 인천 신흥동에 '인천 탄산제조소'라는 사이다 공장을 세웠다. 인기가 좋아 1929년엔 하루에 4천500상자를 생산했다고 한다. 6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 중엔 인천 바다가 아예 사이다 물이라고 믿은 사람도 많았다. 그랬던 인천 앞바다에는 이제 사이다 대신 페트병이 둥둥 떠다닌다.지난 3월 영국 멘체스터 대학 연구진은 경기·인천 해안이 전 세계에서 미세 플라스틱에 가장 오염된 지역 2위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위는 낙동강 하구였다. 전 세계적으로 ㎡당 평균 미세플라스틱 개수가 1만~10만 개인 곳은 우리나라 두 곳과 영국 머지 강과 어웰 강, 미국 세인트로렌스 강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시판 중인 굴과 바지락 등 조개류 4종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미세 플라스틱은 페트병의 마모로 생기는 지름 5㎜ 이하의 작은 입자들이다. 현재 전 세계 바다에는 이런 자연 분해되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 입자 51조 개가 떠다닌다고 한다. 이를 플랑크톤이, 또 그것을 물고기와 같은 상위 포식자가 섭취하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른다. 전문가들은 매년 평균 8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인 참치의 연간 어획량과 맞먹는다.2050년이면 바다 속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수가 더 많아 '플라스틱 바다'가 된다고 한다. 60여 년 전 값싸고 내구성이 좋아 가히 '혁명'이라 했던 플라스틱이 지구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인천시는 인천 앞바다 폐기물 수거에 매년 80억원을 쏟아붓는다. 바다를 살리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 1위 국가다. 오는 31일은
-
[참성단]사제(師弟)가 직무관계? 지면기사
공자의 제자 중에 학문과 덕행이 유별났던 10명의 제자가 있으니 십철(十哲)이다.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자로, 자유, 자하 등이다. 십철 중에서도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덕행을 후세에 온전히 전달할 제자로 안연을 꼽으며 가장 아꼈다. 그 안연이 요절하자 "하늘이 나를 버린다"며 통곡했다. 시정잡배였던 자로는 공자의 교육과 추천을 통해 뛰어난 정치가로 환골탈태했다.유교적 이상국가를 실현하려던 유세정치에는 실패한 공자였지만 제자복 만큼은 차고 넘쳤고, 십철을 비롯한 제자들 덕분에 유교는 동양사상의 대표 사상이 됐다. 석가모니에게도 석가십성(釋迦十聖)이라는 열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있어 불법이 세상에 퍼질 수 있었다. 예수의 열두제자가 전파한 기독교가 서구역사에 끼친 영향은 일설로 형언이 불가능하고.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입시사관학교 웰튼에 갓 부임한 영어교사 존 키팅은 책상위에 올라서 제자들을 굽어보며 말한다.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알고 있나? 사물을 또 다른 각도로 보려고 해서다. 무언가를 안다고 했을 때 그것을 다른 눈으로 봐야한다. 틀리고 바보같지만 시도를 해봐야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일깨워주는 스승의 역할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진학보다 인생을 가르친 죄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그를 향해, 제자들은 '마이 캡틴'이라 부르며 책상을 밟고 올라선다. 키팅은 교단을 잃고 제자를 얻었지만,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다 잃은 셈이다.오늘은 '스승의 날'이지만, 최근 며칠 사이 '김영란법(청탁금지법)' 논란으로 빛이 바랜 느낌이다.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한송이 달아줄 수 없다는 법적 금제의 타당성을 따지다 보니, 자존심이 구차해진 선생님 1만여명은 아예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청원을 청와대에 올렸을 정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단호하다. 학부모와 교사, 학생과 교사는 성적, 수행평가 등 '직무연관성'이 있어 한송이 꽃 선물도 불가하단다.권익위의 김영란법 해석은 인성교육 대신 진학지도라는 직무만 남은 학교 현실을 국가 스스로 인정
-
[참성단]여·야 당 대표들의 막말 지면기사
요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재밌게 보고 있다. 경계 없는 인간적 연대(連帶)가 만들어 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때론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드라마는 보여준다. 최근 방영분에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돌연 귀의(歸依)한 겸덕이 옛 여자가 찾아오자 반조(返照)를 위해 면벽 묵언(默言) 수행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반조는 몸(身)으로 입(口)으로 생각(意)으로 짓는 업(業)을 돌이켜 보는 불교 수행의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면벽 묵언 수행만큼 좋은 게 없다. 달마대사가 묵언 정진의 면벽 좌선을 9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면벽구년(面壁九年)'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가벼운 입 놀림으로 인한 낭패의 사례로 늘 등장하는 게 콘드라티 릴레예프다. 그는 1825년 12월 14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 날 벌였던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의 밤' 주동자였다. 사형 언도를 받고 동료들과 함께 사형대에 목이 매였으나 운이 좋았던지 줄이 끊어져 혼자만 살았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교수형 집행 과정에서 살아난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며 살려주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밧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고 조롱했다가 진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입을 다물었다면 살아남아 후에 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막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이제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질세라 막말에 가세했다.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 김성태 원내대표를 겨냥해 "깜도 안 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도로 누웠다"며 "한국당은 빨간 옷을 입은 청개구리당"이라고 조롱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뚫어진 입이라고 막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설화(舌禍)로 그토록 고생 하고도 고쳐지지 않는 게 정치인들의 막말이다. 잊혀지는 것보다 막말이라도 해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