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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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남북정상회담 만찬메뉴 지면기사
만주족 왕조인 청나라의 강희제는 만한전석에 민족화합의 메시지를 담았다. 만주족의 식탁과 한족의 식탁을 합쳤다.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를 한 식탁에 모아 하루 두번씩 사흘에 걸쳐 나누어 먹여 한 식구(食口)의 연대를 확인토록 한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는 왕의 배식 실패로 공자를 잃었다. 조국인 노나라를 등질 구실이 마땅치 않았던 공자에게 제사고기 분배를 깜박했고, 공자는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봇짐을 꾸렸다. 조조는 자신의 개국대업을 반대하는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다. 텅빈 도시락의 의미를 모를리 없는 순욱은 자결한다.권력자의 식탁과 음식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와대 정상만찬 때 올랐던 독도새우를 놓고 일본이 시비를 걸었다. 독도가 한일간의 갈등 현안인 걸 뻔히 알면서 독도새우가 웬말이냐는 요지의 시비였다. 우리 입장에선 택도 없는 투정이지만, 일본은 한국의 의도적 영토선언 메뉴로 여긴 것이다.곧 이어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혼밥외교라는 비난에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이 혼밥을 먹을 정도로 중국의 홀대를 받았다는 여론이었다. 청와대는 오바마의 베트남 혼밥에 견주어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을 변명했지만,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의전은 분명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결정되자 중국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정의용 특사를 극진히 모시더니, 북중정상회담 만찬에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게 2억원 짜리 명품 마오타이를 대접했다. 지금 베이징에서 한중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정상만찬은 확 달라질게 분명하다.청와대가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를 공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바다에서 잡은 민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쌀,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의 서산농장 한우, 문 대통령의 고향생선 달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을 올린단다. 남북대화와 교류의 남측 주역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메뉴가 하나씩 식탁에 오를 때 마다 대화가 이어지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다만 윤이상의 고향 통영문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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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로스쿨 서열화 지면기사
말이 '소년등과(少年登科)'지 조선시대에 20세 이전 대과 통과는 불가능했다. 세조 3년 16세에 급제한 남이(南怡)는 무과라 가능했다. '신동'이었던 율곡 이이는 13세에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29세에, 퇴계 이황도 31세에 등과했다. 이유가 있었다. 대과를 통과하려면 진사나 생원이 되기 위한 소과에 먼저 합격해야 한다. 소과에 통과해야 성균관 입학 자격이, 성균관에 300일 이상 출석해야 대과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소과 시험엔 1만명이 넘는 유생들이 응시해 200여명이 합격하고 대과 통과 인원은 불과 33명이었다.옛날로 치면 과거 급제와 같은 게 사법시험이었다. 개인 능력으로 사시만 통과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신분 상승 사다리였다. 대학 주변에 고시촌이 생겨나고, 용이 되기 위해 나이를 잊고 매진하는 '고시 낭인(浪人)'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됐다. 지난해엔 아예 사법시험을 없애 버렸다. '고려 광종 이래 1천년 넘게 순전히 시험만으로 인재를 등용하던 전통의 종말'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베일에 가려진 전국 25개 로스쿨의 '제 1∼7회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22일 공개됐다. 대한변협이 낸 정보공개 소송이 승소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서울대가 78.65%의 최고 합격률을 보인 반면 원광대는 24.63%에 그쳐 합격률이 3배가 넘는 극심한 편차를 보였다. 정원 50명에 불과한 수원 아주대는 지방대임에도 누적 합격률 91.9%를 기록해 4위, 올해 치러진 7회 시험도 68.12%로 4위에 올랐다. 교수진이 변호사시험 합격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을 일대일 개별 지도한 덕이다.합격률 공개로 로스쿨이 '변호사 시험학원'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도한 경쟁도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그래서 '사시부활론'의 목소리가 다시 쏟아져 나온다. '사시 낭인'이 '변시 낭인'으로 명칭만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쟁률 공개가 옳았는지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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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조양호 회장의 '완행 사과' 지면기사
아무래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시련이 쉽사리 진정되긴 힘들어 보인다. 조 회장이 '물벼락 갑질' 파문에 대해 22일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게도 구럭도 다 놓친 형국은 그대로다. 장녀 조현아의 '땅콩'에 이어 차녀 조현민의 '물컵'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가문과 그룹경영이 위기에 처한 현실이 어이없고 기막혀서였을까, 조 회장의 한참 늦은 사과를 이해하기 힘들다. 폭주하는 분노의 속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느렸던 완행 사과는 미스터리다.대한항공은 내년이면 창업 50주년을 맞는 국적항공기업이자 재벌그룹으로 소비자의 평판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모를리 없다. 당연히 조현민의 악다구니가 담긴 육성이 공개되자마자 대한항공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했다. 특히 일반 임직원이 아닌 오너 일가가 저지른 오너리스크 아닌가. 조 회장과 당사자인 조현민이 즉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며 저두평신(低頭平身), 납작 엎드렸어야 옳았다. 조 회장 일가가 망설이면 임원들이 종용해야 맞았다. 완행 사과의 이유가 조 회장 일가의 눈치만 살핀 임원들의 침묵이었다면, 대한항공은 정말 위기다.두 자매의 '땅콩'과 '물컵'에서 비롯된 나비효과가 조 회장 가문과 대한항공을 넘어 사회전체로 확산되면서 전례없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 수백명이 '단톡방'을 개설해 회장 일가의 비리를 수집해 경찰에 넘기고 있다. 골리앗의 갑질에 다윗들이 조직적인 저항에 나선 셈인데, 재벌기업들이 새로운 경영리스크 사례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사실 '갑'들이 너무 높은데 있어 몰랐던 모양인데, '을'들이 만능에 가까운 스마트폰으로 모든 콘텐츠를 순식간에 유통시키고 공유하는 네트워크로 무장한지 오래다. 산업화 시대의 갑질을 부리다가는 정보통신 시대의 을들에게 판판이 깨질 수 밖에 없다. 조 회장은 몰라도 딸들은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충분히 알만한 연배인데 연달아 사고를 쳤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을 함께 한 조 회장과 삼남매의 환한 미소가 기억난다. 그 미소로 사람과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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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천상병 예술제 지면기사
1987년 12월 3일. 기자는 그날 의정부 장암동 수락산 아래 있었다. 허름한 슬레이트집에 사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그때 기사 한 토막. '집에 들어서니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문을 여니 한평 남짓한 방에 시인이 누워 있었다. 배는 임신부처럼 불룩했다. 간이 안좋은 모양이었다. 밥상 겸 책상에 예쁜 어린애 사진이 있어 누구냐고 했더니 잡지책에 하도 예쁜 아이 사진이 있어 오려서 액자에 끼워 두었다며 웃었다. 그때 함께 사는 장모가 한약을 방안으로 들이밀었고,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입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인 천상병은 지금 몹시 아프다.'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취재를 끝내고 나오는데 시인은 "돈 좀 줘! "라며 손을 내밀었다. 익히 들었던 행동이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만원 오천원 천원을 꺼내 내밀었더니 천원 한장을 달랑 집으면서 "이거면 돼"라고 말했다. 그때 그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천상병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교도소에서 3개월 치욕스러운 심문을 받은 후 풀려났다.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갈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아이도 낳을 수 없게 되었다. 문단에 너무도 잘 알려진 시인의 일화 한 토막. '그가 죽고 난 뒤 몇 백만원인가 하는 조의금이 들어왔다. 시인의 가족으로는 처음 만져보는 큰 돈이었다. 시인의 장모는 그걸 사람들 손이 타지 않는 곳에 감춘다고 한 것이 하필이면 아궁이 속이었다. 그걸 모르고 시인의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시인이 하늘로 돌아가던 1993년 4월 28일, 의정부시립병원 영안실 밖으로는 추적추적 봄비가 꽤 내렸다고 한다.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예술제가 의정부시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올해는 시인이 소풍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의 버려야 할 버릇 중 하나가 생전에 홀대하다 죽은 후 부산을 떠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예술가들에게는 없는 게 많다. 부(富),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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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강화도 '갱징이 풀' 지면기사
칠면초(七面草)는 칠면조의 얼굴처럼 붉게 변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도 토박이 노인들은 칠면초를 '갱징이 풀'이라고 부른다. 꽃인지 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풀은 밀물에 묻히면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기자 초년병 때 만난 갑곶 노인들은 소나 말도 이 풀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갱징이 풀'이고, 소나 말이 그 풀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이야기는 병자호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대군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월곶 성동 나루터에는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강을 건너게 해 줄 배가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가마가 도착했다. 강화도 검찰사로 임명을 받은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의 어머니와 아내가 탄 가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나 발버둥을 치는 피난민들은 외면한 채 두 여인과 식솔,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만 싣고 강을 건너갔다.그리고 곧 오랑캐가 나루터에 들이닥쳤다. 후대는 그 모습을 "순식간에 거의 다 채고 밟히고 혹은 끌려가고 혹은 바다에 빠져 죽고 하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과 같았으니 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 펄에서 죽어가면서, 또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경징아! 경징아! "부르며 저주했다고 한다. 그때 흘린 원한의 피가 붉은 펄 꽃으로 피었다는 것이다. 그게 말과 소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갱징이 풀'이다.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해안선 길이 99㎞로 세계적인 갯벌과 천연기념물 205-1호 저어새가 서식하는 곳. 매화마름, 갱징이 풀 등 56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강화도를 소개한 '강화도의 나무와 풀' '강화도 지오그래피'(작가정신 刊) 두 권의 책이 동시 출간됐다. 강화도가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가 무심했고 늘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른 탓이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보다 더 아름답고, 서러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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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혁명의 교훈 지면기사
"너무도 험악한 정세와 너무도 강하고 엄청난 어둠 속이라 겁많은 사람일지라도 굳은 각오를 하게 되고, 또 아무리 대담한 사람일지라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올빼미의 시선을 빌려 1832년 6월혁명 전야의 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혁명은 규범 대 규범의 충돌이고, 현재를 지키려는 세력과 전복하려는 세력의 격돌은 자비롭지 않다. 위고의 서사는 전환의 역사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는 군중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혁명의 동력은 악의적인 구체제의 전복을 희망하는 대중이다. 역사적 대중은 혁명이 혁명을 부르고 소멸하는 반복과 순환의 동력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나폴레옹의 쿠데타-왕정복고-1848년 2월혁명-1871년 파리코뮌에 이르는 1세기 동안 민중혁명과 왕정복귀 쿠데타를 거쳐 선거혁명으로 마무리됐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은 이제 '실패'라는 낙인이 찍혀 역사에서 폐기됐다.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연쇄 혁명 '아랍의 봄'은 내전과 종파간의 대립 등 혁명의 여진이 '아랍의 겨울'을 불렀다.오늘로 1960년 4·19혁명이 58주년을 맞았다. 해방공간을 꽉 채운 이념적 대립과 계층간의 이해(利害) 충돌로 극심한 정치혼란기의 대한민국은 4·19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획득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독재복고의 진통속에 혁명세대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으로 나뉘었지만, 덕분에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국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4·19혁명, 두번의 쿠데타,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여진이 남긴 이념의 골이 너무 깊어 대한민국은 아프다.박근혜 전 대통령을 퇴진시킨 촛불시위는 모든 혁명은 모든 권력의 경종이라는 교훈을 일깨운 사건이다. 시대정신에서 홀로 이탈한 권력은 언제든 혁명적 상황에 직면한다.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격상시켜 혁명의 면류관을 쓴 문재인 정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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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별이 지다 지면기사
노마 데스먼드는 텅 빈 저택에 유폐된 여왕처럼 살아간다. 이미 대중의 갈채도 환호도 모두 사라졌다. 화려했던 옛날은 그저 덧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 같은 것. 영화가 제작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데스먼드역을 맡은 글로리아 스완슨의 소름 돋는 연기, 특히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빌리 와일더가 영화 '선셋 대로(Sunset Blvd.)'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천하를 호령한 대 스타라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 흘러간 물로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평범한 자연의 섭리였을 것이다. 할리우드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도 대 여배우를 갖고 있다. 최은희다.젊어서 과부가 된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의 친구간 애틋한 사랑을 다룬 주요섭의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발표된 것은 1935년 일제 치하때였다. 과부의 사랑이 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거리도 아닌 시절이었다. 주요섭은 당대 소설가 중 여성 심리를 묘사하는데 단연 일인자였다.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1961년 이 작품은 동명으로 영화화됐다. 감독 신상옥, 어머니 역에 최은희, 촬영은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24번 1 정준식의 집에서 진행됐다. 방화수류정 등 수원이 배경이었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원작도 좋았지만 그래도 흥행의 1등 공신은 당대 최고의 배우 최은희가 큰 역할을 했다.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필모그래피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성춘향'·'빨간 마후라'와 함께 언제나 맨 앞을 장식한다.최은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1960년대를 전후로 엄앵란, 김지미와 함께 한국 영화 황금기의 스크린을 누빈 톱스타였다. 78년 신상옥 감독과 차례로 홍콩에서 납치돼 북한에 머물다 8년 만에 탈출하는 등 '삶 그 자체가 영화'였을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배우. 생전에 늘 "되돌아보면 내 삶은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말한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생전에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3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언제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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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정권의 결정장애 지면기사
결정장애는 넘쳐나는 정보와 기회에 갇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심리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다. 지난해 한 취업포털 업체는 직장인 80.6%가 결정장애를 겪었다는 설문조사를 밝혔는데, 메이비족(Maybe族)은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독일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가 '결정 장애세대(Generation maybe)'에서 처음으로 쓴 단어로, '글쎄요'라며 결정을 유보하는 신세대의 경향을 규정한 것이다.사람들의 심리는 시장에 반영된다. 소비자의 결정장애를 치유하는 메뉴가 넘친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딜레마는 짬짜면으로 극복했고, 치킨집의 '양념반 프라이드 반' 메뉴는 위풍당당하다. 커피 마저도 컵을 반으로 나누어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반반 담아주기에 이르렀으니 가히 듀얼푸드의 전성시대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한판 위에 육·해·공 식재료가 한꺼번에 올라간 한국형 피자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녁 회식 메뉴와 장소를 찾기위해 수많은 먹방프로그램을 순회하며 탈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결정장애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것이다. 결정 과정의 스트레스는 물론 결정의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벗어던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결정의 위임은 주체의 상실로 이어진다. 자기의 결정을 미루는 사람은 사회적 신뢰를 잃기 쉽고, 사회성을 잃은 사람이 행복할리 없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우유부단함이 습성화된 사람 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대로다.최근 권력핵심의 결정장애 현상이 눈에 띄어 걱정이다. 김상곤 부총리의 교육부는 대입제도개편안의 결정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미뤘다. 국방부는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필요한 장비반입 결정을 시민단체의 반대농성으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압권은 청와대다. 김기식 금감원장 거취 결정을 중앙선관위에 위임했다. 결국 선관위는 16일 전체회의를 열어 장고 끝에 김 원장의 '5천만원 셀프 기부'에 대해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원장은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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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철없는 자매(姉妹) 지면기사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은 철저하고 빈틈이 없는 성격이었다. 엄격한 유교적 가풍을 중시했다. 웬만해선 자식들과 겸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화목'을 중시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청운동 자택에서 자식들과 아침 식사를 같이했다. 연암(蓮庵) 구인회 LG 창업주는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았다. '신뢰'가 경영의 최고 미덕이라고 여겼다. 공동창업주였던 허준구 회장과 그룹이 분리될 때 단 한마디의 잡음이 들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재벌'은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지만, 이렇듯 재벌 1세대들의 뚜렷한 경영철학은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는 밑거름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56년 10월 36세 한진상사 조중훈 대표는 '책임제 수송계약'을 들고 미군 고위층을 찾아갔다. 운송 도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이유 불문하고 전액 변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미군용 캔맥주 운송을 맡게 됐다. 계약기간 6개월. 대금 7만 달러. 조 사장의 좌우명은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은 나중에도 얻기 힘들다"였다. '신용'을 최우선 덕목으로 휴일도 없이 수송업무를 강행했다. 단 한 번의 계약 위반도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얻은 신용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지금의 한진그룹이 됐다. 생전에 정석(靜石) 조중훈 창업주는 그 어느 그룹 회장보다 직원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 존경을 받았다.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갑질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회의 도중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나이 많은 간부급 직원에게 막말을 해왔다고 한다. 조 전무는 2014년 '땅콩 회항사건'으로 사회를 들끓게 한 조현아 칼 호텔 네트워크 사장의 친여동생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없는 자매(姉妹)다. 인성이 이런데 경영능력이 있을 리 없다. 갑질을 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함량 미달임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 자매들이 정석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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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大學入試變遷史 지면기사
미국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라는 말이 있다. 아마 한국사도 뒤집으면 '대학입시변천사'쯤 될 것이다. 대학진학률 90%가 보여주듯 대학입시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언제나 늘 뜨겁다. '맹모 삼천지교'를 앞세우며 옥답을 팔아 자식을 키운 우리 부모들이다. 이 뿐인가. '교육 백년지대계'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아는 상식적인 용어가 됐다.1954년 대입 '국가 연합고사'가 치러졌다. 첫 국가시험이라 느슨했는지 커닝 소동이 터지면서 시험은 무효처리됐다. 1968년 사립대학 입학부정이 문제가 되자 대입 4개월을 앞두고 '대학예비고사' 실시를 발표했다. 그래서 69학번이 날벼락을 맞았다. 군이 정권을 잡은 1980년 7월 30일. 국보위는 과외폐지를 골자로 하는 '7·30 조치'를 발표했다. 1981년 졸업정원제와 내신이 도입됐다. 1982년 예비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실시됐다. 학력고사는 1994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변경됐다.대학입시변천사를 논할 때, 단연 으뜸은 김대중 정부 때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일 것이다. 1998년 10월 이 장관은 야간 자율학습과 월간 모의고사를 폐지하며 '당구 하나만 잘 쳐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대학 무시험전형' 확대를 선언했다. 입시지옥에 시달렸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첫 적용인 2002학년도 수능생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 슬프고 끔찍한 사고를 보며 자란 1983년생 '이해찬 세대'는 역대 최고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고 멘붕에 빠졌다. 그 후 '이해찬 세대'라는 고유명사는 진보정권 집권 기간 내내 '무능 정권'을 상징하는 조롱의 대상으로 쓰였다.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4년 노무현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EBS와 수능 연계로 학생들은 내신, 수능, 논술을 모두 챙겨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겪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거기에 '학생부 종합전형'까지 더해졌다. 이렇게 해방 이후 대학입시는 16번 바뀌었다.교육부가 그제 2022학년도 입시안을 공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