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설] 'APEC' 유치 실패, 아쉽지만 기회는 또 있다 지면기사
인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유치는 실패로 끝났다.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선정위원회는 지난 20일 경주시를 개최도시로 정하는 내용의 건의안을 의결해 정부의 준비위원회로 넘겼다. 돌발변수가 없는 한 경주시가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이 회의의 개최도시로 최종 결정된다. 인천은 2022년 12월 범시민유치위를 출범시키고, 110만명에 이르는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는 등 회의 유치에 공을 들였으나 경주·제주와의 3파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일각에선 개최도시 선정 과정에 지역균형발전론이 영향을 미치고, 늘 지적돼온 중앙 정치력의 결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찌감치 제기됐었다. 하지만 인천시나 유치위는 다른 도시들보다 우위에 있는 관련 인프라와 경제협력 증진이라는 회의 취지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실패의 충격과 아픔이 너무 컸던 탓일까. 개최도시 선정 발표 이후 인천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선정 다음 날인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마치 수능 만점자를 탈락시킨 것과 같은 참 나쁜 결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외교부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유 시장은 경주시가 개최도시 공모·평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평가의 객관성이 결여됐다고도 주장했다. 유 시장은 잘못된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곧 외교부 장관을 만나 신중하고 현명한 결정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년 만에 유치 재도전에 나섰으나 역시 고배를 마신 제주자치도의 오영훈 지사가 "매우 아쉬운 결과"라면서도 제주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승복의 뜻을 나타낸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선정 결과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천의 심정은 이해된다. 지난 1년 반 동안 회의 유치에 쏟은 노력과 정성이 간단치 않았다. 인천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친 셈이어서 아쉬움이 더욱 클 것이다. 외교부는 인천시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만큼 경주시를 APEC 개최도시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인천시 또한
-
[사설] 문화유산 송도역사 복원 외치다 철거한 연수구 지면기사
연수구가 결국 옛 송도역사를 철거했다. 협궤열차 수인선 마지막 역이었던 옛 송도역사 건물이 지난달 완전 철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수구는 안전등급 판정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동안 공언해온 복원원칙을 뒤집은 결정인데다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들도 반영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연수구청은 송도역사 철거가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전진단결과 사용금지하고 보강·개축해야 하는 E 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송도역사가 수인선 폐선 이후 20여년간 사실상 방치돼온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구조물 보강을 통해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이나 다른 대안을 찾을 노력은 하지 않고 철거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옛 송도역사 복원사업이 주목받은 이유는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가치 때문이었다. 수인선은 일제가 경기도 내륙의 미곡을 인천으로 수송하고 인천으로부터는 생활 물자를 보낼 목적으로, 인천에서 수원(水原)을 거쳐 여주(驪州)에 이르는 52㎞ 구간에 부설한 철도였다. 옛 송도역사는 1937년 개통한 협궤 수인선 역사 가운데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역사였으며, 1973년 남인천역 폐쇄 이후 20여년간 수인선의 종착역으로 남아 있었다.송도역사의 가치에 대해서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연수구청에서도 "여러 수인선 역 가운데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최근까지도 주장해왔다. 연수구청장은 지난해 5월 '승기천·송도역 현장방문' 때에도 송도역사의 복원을 강조했으며, 12월 '송도역사 복원공사 착수보고회'에서도 송도역사의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문화공원으로 복원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송도역사 건물은 지어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가치였다. 그 때문에 2018년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송도역사 건물부지가 도로에 포함되어 있어 도로 개설로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도시계획 변경안을 통해 도로폭을 축소함으로써 옛 송도역사 건물 전체를 문화공원 안에 존치될 수 있도록 조치한 바 있다. 연수구청도 2019년부터 전문가와 문화계 인사로 구
-
[사설] 소비자 감정 건드린 쿠팡의 악수(惡手) 지면기사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쿠팡을 향한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쿠팡이 랭킹순 항목의 검색 순위를 조작해 소비자들에게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정황이 발견됐다며 쿠팡과 쿠팡의 자회사 CPLB를 향해 1천4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여기에 형사고발까지 시사하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철퇴를 내렸다.공정위가 칼을 빼든 이유는 두 가지다. 쿠팡이 PB 상품과 직매입 상품의 판매를 늘릴 목적으로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점, 그리고 임직원을 동원해 '셀프 후기'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자사 연관 상품들이 검색 순위 상위에 노출되는 효과를 봤고, 이를 소비자들이 우수한 상품으로 오인해 구매를 선택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쿠팡의 행태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제한했다는 측면에서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1천억원대의 막대한 과징금 폭탄을 부과했다.쿠팡은 즉각 반발했다. 전 세계 유례 없이 상품 진열을 문제 삼아 과도한 과징금을 매긴 건 형평성을 잃은 조치라며 강한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행정소송을 통해 부당함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공정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건데, 문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천만명 이상의 회원들이 이용 중인 로켓배송 서비스를 축소·중단할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이다. 로켓배송은 늦은 밤에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서비스다. 공정위와의 분쟁 속에서 나름의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로켓배송이었지만, 여론전을 펼치려다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더욱이 쿠팡은 20일 예정됐던 부산 첨단물류센터 기공식도 일방적으로 취소하며 배째라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로켓배송 중단을 우려하던 소비자들은 차츰 분개하기 시작했다. 공정위의 조치가 과도한 것 아니냐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이들마저도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다. 쿠팡의 대응은 결과적으로 악수(惡手)가 됐다.쿠팡은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이용 아래 성장을 거듭
-
[사설] 대부업 최고금리 저신용자 벼랑으로 내몬다 지면기사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저신용자들이 늘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17일 발표한 '저신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6∼10등급)가 최소 5만여 명, 최대 9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조달한 금액은 8천300억∼1조4천300억원으로 추정됐다. 재작년에 불법 사금융으로 옮겨간 인원(최대 7만여명)과 조달금액(최대 1조2천300억원)보다 더 증가했다.설문은 최근 3년 이내 대부업 또는 사금융 이용 경험이 있는 저신용자 1천317명을 대상으로 지난 2월 한 달 동안 실시됐는데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응답자의 77.7%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급전을 구할 방법이 없어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74%는 대부업체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응답자의 50%는 연 100% 이상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었고, 연 1천200% 이상의 금리를 내고 있다는 비율도 10.6%에 달했다.영업을 중단하거나 신규 대출을 하지 않는 대부업체들이 늘고 있고, 그나마 대출을 해주는 곳들도 부동산담보가 확실한 것만 취급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합법적인 대부업체도 고금리 때문에 시중에서 돈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2년 이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대폭 상승, 대부업체들의 조달금리가 크게 높아졌으나 법정 최고금리는 20%로 불변이어서 대부업체의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마진이 중요한데 원가 금리가 법정 최고금리를 상회해서 돈을 빌려줄수록 손해 개연성이 커지는 한계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경기악화로 대부업 이용자들의 상환능력이 떨어져 대부업체 연체율이 급증한 것은 설상가상이었다.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마지막 대출 보루인 합법 대부업체의 문이 좁아지자 어쩔 수 없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눈덩이 가계부채 폭탄에 저신용자가 뇌관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단기자금 대출이 절실한 취약계층에겐 활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현재 대부
-
[사설] 의료계와 대화 위해 불필요한 자극 자제해야 지면기사
우려했던 동네 병·의원의 대규모 집단휴진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건복지부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 결정을 따른 전국의 병·의원은 모두 5천379곳으로 전체의 14.9%에 그쳤다. 사전 신고한 숫자보다는 훨씬 많았지만 지난 2020년 의료계 파업 첫날 32.6%에 비하면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규모다. 경기도는 17.3%로 전국 평균을 조금 상회했고, 인천시는 14.5%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휴진 사실을 모른 채 가까운 병·의원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환자들의 불편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 갑작스러운 환자 발생으로 가슴을 졸여야 했던 국민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싶다.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함께 내보이고 있다. 집단휴진 당일 모든 의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정부는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불법 휴진이 최종 확정된 의료기관에 대해선 엄중한 법 집행을 재확인했다. 또 집단휴진을 주도하고 있는 의협에 대해서는 해산까지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집단휴진을 '환자를 저버린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한 대처를 주문했다. 반면 의대생과 전공의에게는 학업과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망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이미 집단휴진 중인 서울대병원 교수들에 이어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오는 27일부터 휴진에 들어가고, 의협 또한 이날부터의 무기한 휴진을 선언함에 따라 이날이 사태의 분수령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가 연일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선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이 집단휴진 전날인 지난 17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모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의혹을 제기한 것은 생뚱맞다. 1천 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리베이트 수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진행 중인 수사를 이런 식으로 노출시키는 의도가 궁금하다. 만약 정부의 강공 모드에 경찰이 '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는' 의도였다면 불순하다. 경찰의 '압박
-
[사설] 구시대적인 공람제도로 사유재산 침해할 수 있나 지면기사
경인일보 18일자 7면에 보도된 '땅주인 항의해도 밀어붙여… 오산시 불도저 행정' 기사는 구시대적 행정이 국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산시는 지난달 한 토지주의 농지 위로 6차선 도로를 신설하는 사업계획 고시 공고를 냈다. 토지주는 즉각 이의신청을 했다. 사업 실시 허가전 마지막 절차다.하지만 오산시와 토지주 사이의 분쟁의 원인은 2년 전으로 소급된다. 시가 토지주의 땅을 도로구역으로 지정한 때는 2022년이다. 시는 도로구역 지정 공람 절차를 법대로 준수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법적 절차란 국토계획법상 지자체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의견청취 절차인 2개 이상 지방일간지 및 지자체 홈페이지 공람내용 게재다.문제는 공공사업으로 사유재산권을 침해받을 당사자가 공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데서 발생했다. 해당 토지에 사업계획을 세우고 토지주는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의 도로구역 지정과 공람 실시를 알게 됐다고 한다. 어떻게 땅주인도 모르게 사유지에 도로개설 사업을 벌일 수 있느냐는 항의는 시의 법적 절차 이행 답변에 무력했다. 자신의 땅에서 벌어진 공공사업의 전모를 알게 된 토지주는 결국 지난달 도로신설 사업계획 고시공고를 기다려 이의제기를 할 수 있었다. 땅을 활용할 계획이 없었으면 이번에도 모르고 넘어가 자기 땅에 도로가 건설되는 상황을 지켜볼 뻔했다.오산시 탓이 아니라 공람제도 자체가 문제다. 국민 대다수는 언론과 관공서 홈페이지에 뜨는 공람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대규모 택지개발처럼 사업 이해관계인이 집단적이면 공람 없이도 사업 정보는 저절로 공유되고 의견제시 기회도 잃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오산시의 경우처럼 공람 대상이 소규모일 경우 자기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매일매일 눈에 불을 켜고 공람을 찾아보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2006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용역한 공람제도 개선방안 연구에서도 주민들이 공람 사실 자체를 인지하기 어려운 공람제도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해당사자가 인지할 수 없는 공
-
[사설] 여객 '1억명 시대' 역행하는 인천공항 자회사 인력 지면기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인천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모두 발언에서 "앞으로 동북아 허브인 인천공항을 교두보로 우리 전략 산업인 항공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인천공항 4단계 사업 구상을 밝혔다. 인천공항 4단계는 제2여객터미널 확장, 제3활주로 건설 등으로 공항 시설을 확대하는 국책 사업이다. 이 사업이 완공돼 제2여객터미널 확장 운영이 시작되는 오는 11월이면 연간 여객 수용능력 1억명 시대를 열게 된다. '글로벌 톱5 항공 강국'의 장밋빛 미래상이 기대되는 한편 '1억명 시대'의 내실을 다지려면 그 이면의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주목해야 한다.18일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이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모여 '인력 증원'을 요구했다. 이들은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며 청소, 보안, 시설, 설비, 검역 등 여러 분야에서 공항 유지에 필수 업무를 수행한다. 노동자 요구는 간명하다. 인천공항 4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면 인천공항 연간 여객 수용능력은 7천700만명에서 1억600만명으로 2천900만명(22%) 증가한다. 그에 걸맞은 인력 증원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자회사 3곳에 공항 운영·보안·시설 업무를 맡긴다. 지난 한 해 동안 3개 자회사 직원 9천명 중 1천명이 퇴사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인력 증원 대책을 요구해 왔지만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인력 부족은 노동 강도 강화로 이어졌고, 그로 인한 퇴사 행렬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매년 반복된다.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각 자회사가 신규 채용으로 인원을 뽑아도 10명 중 3명은 1년 내 퇴사할 정도로 근로 조건이 열악하다.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 8월 '공항 운영 완전 정상화'를 선포했다. 공항 여객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근접하는 등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선언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자회사 경영에 간섭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인력 충원 없는 4단계 완공은 공항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지난
-
[사설] 주민들이 고개 젓는 1기 신도시 재건축 계획표 지면기사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재건축 선도지구 공모를 앞두고 주민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지난 13~14일 이틀간 열린 '평촌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공모 관련 동별 설명회'에서 주민들은 '깜깜이 동의 절차'에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구체적인 정비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부랴부랴 공모를 추진하면 무슨 탈이 날지 모른다는 주장은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선도지구는 정비예정 지역들 가운데 노후도·주민 불편·정비 시급성 등을 고려해 먼저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국토교통부의 기본방침-지자체의 기본계획 순으로 로드맵을 수립하던 기존과 달리 '투 트랙'으로 동시 진행한다. 이로써 기간을 2~3년가량 앞당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오는 25일 지자체별 선도지구 공모 공고를 한 뒤 올 11월 중 최종 선도지구를 선정할 계획이다. 2025년 특별정비구역을 지정하고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을 거쳐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돌발 변수 없이 로드맵 대로 진행될 지는 의문이다.정부가 공개한 선도지구 선정 표준평가 기준도 못미덥다. 주민동의 여부 배점이 60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량 평가로 진행할 때 세대수·세대당 주차대수 등을 따져보면 면적이 작고 세대가 밀집한 단지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이러한 단지가 과연 사업성이 잘 나올 수 있을지, 펜대만 굴린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설명회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크게 의문을 제기했다.특별정비예정구역 단위별로만 선도지구 신청이 가능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구역별로 묶인 2~3개 아파트 단지들마다 상황과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데 주민들의 높은 동의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주민들은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이주문제는 어찌할 것인지도 따져 물었다. 당장 물망에 오르내린 단지 아파트값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하수도시설, 교통대책, 분담금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1기 신도시의 미래도시 변신은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로 될 일이 아니다. 20만7천 가구
-
[사설] 인천시 신청사 설계, '안보' 배제해선 안돼 지면기사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는 인천시가 충무시설로 불리는 '정부기관 비상대피시설'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들어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서해 5도' 등 접경지역을 행정구역에 둔 인천시의 '안일한 안보의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인천시는 2027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신청사 건립을 추진 중으로,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 2단계 심사 신청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신청사 건립에 투입될 예상 비용은 2천848억원 수준이다. 현 시청 운동장 부지를 활용해 연면적 8만417㎡, 지하 4층·지상 15층 규모이며, 주차장도 1천43면이 포함된다. 하지만 거의 완료된 인천시 신청사 설계도에는 충무시설이 없다. 충무시설은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사태 발생시 시장과 공무원, 군·경 등이 함께 사용할 '벙커', '지휘소'와 같은 곳이다. 군에 작전계획이 있다면 민간에는 충무계획이 있다. 충무계획에는 전쟁이나 국가비상사태 시 정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절차가 담겼다. '정부기관 비상대피시설'은 충무계획 이행을 위한 필수시설인 것이다.행정안전부 훈령 297호 '정부기관 비상대피시설 설치에 관한 규정'은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반드시 비상대피시설(충무시설)을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이 훈령에 따라 정부기관 비상대피시설은 정해진 기준 이상의 방폭·방탄과 함께 화생방·EMP(전자기펄스) 공격 등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건축돼야 한다. 규정은 2014년 발효됐다. 그 이전에 지어진 청사의 경우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지만, 발효 이후 건립되는 청사의 경우 행안부는 이 기준의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기준을 충족한 충무시설을 확보해놓고 있다. 세종정부종합청사, 경상북도 등의 신청사 역시 충무시설이 반영돼 설계가 이뤄졌다.설계단계에서 인천시 내부에선 신청사 건립사업에 충무시설이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비용문제 등의 이유로 묵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문제로 '안보'가 빠진 것이다.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전 등 최근 드러난 북측의 도발은 전면전이 아닌 소
-
[사설] 오늘부터 집단휴진, 기댈 데 없는 환자와 국민 지면기사
오늘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집단휴진을 시작으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됨에 따라 대규모 진료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전공의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 등 4개 병원 소속 교수들이 17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는데 오늘 오전부터 실제로 행동에 옮길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도 지난 4일부터 나흘간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집단휴진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내일 하루 전국적으로 병·의원 집단휴진에 들어간다. 전국 20여개 의대 교수들이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지난 14일 총회를 열고 내일 의협의 집단행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예상되는 집단휴진의 규모는 매우 염려스럽다. 서울의대교수 비대위는 지난 주말까지 외래 휴진을 알렸거나 수술·검진 등의 연기 조치를 취한 교수가 400명이라고 밝혔다. 대면 진료를 하는 전체 교수의 40%나 되는 규모다. 내일 휴진을 사전 신고한 병·의원은 1천463개소로 전체 명령대상 의료기관의 4.02%이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의협 집단휴진 당시 첫날 휴진율이 33%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병·의원들이 신고 없이 내일 휴진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증상의 경중을 막론하고 당장 몸이 아픈 국민이 주변의 병·의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그만큼 많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전국 의대병원들의 집단휴진이 장기화할 경우엔 진료 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중증 환자들의 몫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진다.집단휴진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의대 교수들의 주장은 환자들을 분노케 한다. 의대 교수들은 왜 반복해서 중증·응급환자들은 문제없도록 한다는 포장된 발표만 하고 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환자단체 대표는 의사 집단을 조직폭력배와 동일시하면서 학문과 도덕과 상식이 무너진 의사 집단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붕괴되고 있는 진료현장